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어 해수를 활용하기 좋은 지리적 장점을 갖고 있다.
해수를 활용하기 위해 담수화 공정을 거치고 나면 고염도의 농축수가 남는다.
지금까지 농축수는 활용되지 못하고 바다로 폐기되었다.
이에 생기원 한러혁신센터 정다운 선임연구원은 농축수를 바다에 폐기하지 않고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자 연구를 시작했다.
담수화를 계속 하기 위해 개발한 ‘증산발전 기술’.
이를 이용해 농축수를 전기 분해하였더니 그린수소를 포함하여 여러 산물을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
그 기술에는 어떤 원리가 숨어있을까.
그들의 연구 스토리를 소개한다.
전 세계적으로 물 부족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해수를 담수화시키려는 연구는 꾸준히 이뤄지고 있다. 여기서 문제는 담수 후 버려지는 고염도의 농축수이다. 국내에서도 해수 담수화로 발생하는 농축수가 하루 7만 5천t 정도로, 2~3년 안에 하루 17만 5천t까지 증가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고염도 농축수는 바다의 염도를 단시간에 높여 어류의 폐사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버리는 것도 쉬운 문제는 아니다. 이에 연구팀은 폐수로 버려지는 농축수를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다양한 연구를 진행했다. 그러나 연구 목적으로 담수화 설비를 갖추기엔 무리가 있었다. 이에 연구팀은 친환경적인 방법으로 전력을 생산해 담수화 설비를 운영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던 중 식물의 증산작용에서 그 해결책을 찾았다.
정다운 선임연구원(가운데)과 팀원들.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식물의 뿌리에서 흡수된 물은 식물의 줄기와 잎을 따라 전달되는데, 이때 잎의 표면에 있는 기공을 통해 기체 상태로 배출된다. 이를 증산작용이라 한다. 연구팀은 식물의 증산작용 원리를 발전기에 대입시킨 ‘증산발전기’를 이번 연구에 활용했다.
연구팀은 원통형 모양의 카본나노튜브의 한쪽엔 물을 주입하고, 반대쪽에는 물에 젖지 않는 조해성 물질을 도포해 젖은 부분과 건조한 부분의 차이가 유지되도록 했다. 이 차이로 전력이 생산되는 것이다. 또 물을 계속 주입하지 않아도 공기 중의 수분을 자동으로 흡수하여 자가발전이 가능하다. 이렇게 만들어진 카본나노튜브 1개당 생산되는 전력은 0.4V~0.5V 이상으로 3개가 연결됐을 때 1.5V인 건전지 1개의 전력과 동일한 수준이 된다. 게다가 증산발전기는 태양 같은 빛 노출이 필요하지 않아 공간적 제한없이 직·병렬로 무한 적층 연결할 수 있다. 여기에 바람이 불어 증발이 용이해 지면 효율은 극대화된다. 즉 작은 면적에서 밀도있게 발전해 생산 효율을 높일 수 있다는 의미다.
증산발전기에 물을 떨어뜨려 전기를 생산하는 모습.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적층된 증산발전기 모습.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정다운 선임연구원.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연구팀은 증산발전을 이용해 분리한 고염도의 농축수를 활용하기 위해 ‘증산발전-전기투석 담수 일체형 플랫폼’을 먼저 개발했다. 이때 담수와 농축수 사이에 리튬 이온 선택적 멤브레인(Membrane, 차단 막으로 일종의 필터)을 설치했더니 농축수에서 리튬을 결과물로 얻었다. 여기에 증산발전을 이용한 수전해를 통해 수소까지 분리하는 데 성공했다. 현재는 반대쪽에 멤브레인을 추가로 설치, 염소를 분리하여 최종적으로 ‘고순도 리튬 추출 시스템’을 개발했다.
리튬 파우더.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즉 바닷물을 공급하는 수조에서 오른쪽에는 리튬을, 왼쪽에는 염소를 분리해내면 가운데에는 담수만 남게 된다. 증산발전을 이용한 시스템 하나를 만들었더니 담수, 리튬, 수소, 염소를 동시에 얻을 수 있게 된 것.
‘고순도 리튬 추출 시스템’을 활용해 생산한 수소는 그린수소에 해당하기 때문에 그 가치가 매우 높다. 수소 생산 방식에 따라 그린, 그레이, 브라운, 블루수소 등으로 나뉘는데 블루수소와 그린수소의 단가는 5배까지 차이 날 정도. 게다가 마그네슘 분리도 이전보다 용이해졌다. 특히 염호(Salt Lake)에서 리튬을 추출할 때에는 나트륨과 칼륨 등보다 마그네슘의 분리가 매우 어려운데, ‘고순도 리튬 추출 시스템’을 이용하면 쉽게 분리할 수 있다. 정 선임은 “중국 내 마그네슘 농도가 높아 활용하지 못 했던 염호도 이번 기술을 적용하면 마그네슘을 쉽게 분리 가능할 것”이라며 기대감을 내비쳤다.
버려지는 농축수를 활용하기 위해 시작한 연구가 기대 이상의 결과를 가져오면서 정다운 선임연구원 연구팀은 오늘도 즐거운 비명을 지르는 중이다.
고순도 리튬 추출 시스템. ⓒ한국생산기술연구원
고순도 리튬 추출 시스템 원리. ⓒ한국생산기술연구원
리튬 파우더. ⓒ한국생산기술연구원
그동안 리튬은 복잡한 공정 과정과 자원 부족 문제로 ‘부르는 게 값’이 된 비싼 소재였다. 그런데 이번 ‘고순도 리튬 추출 시스템’을 통해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냈다는 데도 의미가 있다. 연구팀이 분리한 리튬을 분말 형태로 만드는 것까지 성공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추출한 리튬분말은 한국세라믹연구원 공인인증 결과 99.6%의 고순도를 보이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지금은 기업과 협업하여 리튬 생산의 규모를 키우기 위한 준비 중입니다. 또한 해수 이외에도 리튬 이차전지 폐배터리나 블랙파우더(각종 전자기기를 분쇄해 나오는 분말)를 활용하여 리튬만을 선택적으로 분리하는 등 재활용 기술로도 활용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럼 머지않아 리튬을 상용화시킬 수 있을 거예요. 또한 추가로 생산된 수소는 포집 및 저장, 운반까지 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할 계획입니다.”
이번 연구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증산발전은 크기가 작고 원리가 단순하기 때문에 언젠가는 우주나 사막과 같이 특수한 환경에서 물을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소형 기기까지로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게 정 선임연구원의 생각이다.
아무리 첨단기술이어도 실생활에서 사용하지 못한다면 의미가 없다. 적은 비용으로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그의 연구가 곧 일상에서도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