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우면서도 강철처럼 강한 소재로 다양한 산업분야에서 사용되는 탄소섬유.
이를 생산할 때 상품성이 떨어지는 ‘저품위 탄소섬유’가 함께 발생하기 마련이다.
한국생산기술연구원(이하 생기원)의 김광석 수석연구원은 이러한 낮은 품질의 탄소섬유를 업사이클링해
가격 경쟁력, 내구성, 내염수성 모두가 우수한 해상태양광 부력체를 제조하는 데 성공했다.
생기원 김광석 수석연구원 ⓒ한국생산기술연구원
태양광 발전은 햇빛을 이용하여 전기를 생산해 내기 때문에 연료비가 들지 않고 대기오염을 발생시키지도 않아 대표적인 미래 에너지원으로 꼽힌다. 하지만 태양광 발전에도 결점이 존재한다. 산지나 임야에 설치하는 태양광 발전 시설이 산림자원을 훼손시키고 경관에도 좋지 않다. 특히 국내에서는 이러한 단점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국토가 협소하여 유휴평지가 적은 데다 인구가 많아 큰 면적을 차지하는 태양광 발전 시설을 설치할 공간이 부족하기 때문.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이 해상태양광 발전이다. 해상태양광 발전이란 바다에 태양광 발전 시설을 설치하는 방식으로, 수온의 냉각 효과 때문에 육상에 설치하는 것보다 발전효율이 좋을 뿐만 아니라 구조물의 광차단 효과 덕에 녹조류 증식이 억제되는 등의 이점이 존재한다. 삼면이 바다로 이루어진 우리나라는 유휴수지가 많아 더욱 친환경적인 해상태양광 발전이 가능하다. 물론 좋은 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부력체를 설치하고 유지 및 보수하는 데 막대한 비용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펄스형태의 빛 에너지를 활용한 표면개질 공정을 실험 중인 김광석 수석연구원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이에 생기원의 김광석 수석연구원 연구팀은 저품위 탄소섬유 복합재에 눈을 돌렸다. 저품위 탄소섬유란 탄소섬유 생산 시 발생하는 공정 부산물이나 표면처리 후 하자가 발생하는 낮은 등급의 탄소섬유를 일컫는다. 그래서 신품 탄소섬유와 비교했을 때 단가는 월등히 낮지만 기계적 특성, 내구성 등이 떨어진다는 한계점이 있다. 여기서 김광석 수석연구원은 저품위 탄소섬유를 활용하여 해상태양광 부력체로 제조했을 때 신품 탄소섬유와 가까운 성능을 낼 수 있도록 ‘업사이클링’하고자 했다.
“저품위 탄소섬유로는 상품성이 떨어지는 중저급 탄소섬유부터 폐기물까지 굉장히 다양한 범위의 탄소섬유를 활용할 수 있습니다. 폐기되거나 싼값에 팔리는 낮은 품질의 탄소섬유를 업그레이드하여 활용한다면 가격 경쟁력 측면에서 매우 우수한 탄소섬유 복합재를 제조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죠. 물론 이를 해상태양광 부력체에 적용했을 때 성능을 높여줄 수 있는 표면개질1) 물체 표면에 새로운 특성을 형성시켜 사용 조건을 만족시킬 수 있는 기능을 부여하는 것 기술 개발이 필요했습니다.”
탄소섬유는 표면이 그라파이트(Graphite)2) 구조로 이루어져 있어 매우 안정적이다. 그래서 복합재료로 사용되는 매트릭스 수지와의 접착강도가 불충분하여 복합재 제조 시 탄소섬유 표면개질이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기존의 표면개질 방법은 독성 부산물이 발생하고 장시간 처리가 필요하거나 물성을 저하시키는 등의 약점이 존재했다.
(왼쪽부터) 김광석 수석연구원 연구팀이 제조한 저품위 탄소섬유를 활용한 해상태양광 부력체 시제품과 수조 내 간이실증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이러한 상황 속, 김광석 수석연구원은 ‘펄스형태(ON, OFF)의 강한 빛에너지’를 표면개질에 활용하면 저품위 탄소섬유 복합재의 기계적 특성과 내구성 및 신뢰성을 높일 수 있음을 알아냈다. 이렇게 탄소섬유의 성능을 업그레이드하여 부력체 제조에 활용했다.
“펄스형태의 빛은 인쇄전자 기술에서 쓰는 소재인 전도성 잉크 내 나노 입자를 소결할 때 사용하던 에너지원(또는 에너지소스)인데요. 탄소나노튜브와 금속 입자 복합화 실험 중 우연히 이 빛 에너지가 저품위 탄소섬유 표면개질에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펄스형태의 강한 빛에너지를 저품위 탄소섬유 표면에 인가하면 기능기가 형성되고, 이 기능기를 통해 매트릭스 수지와 탄소섬유 간의 결합력을 높일 수 있는 거죠.”
1) 물체 표면에 새로운 특성을 형성시켜 사용 조건을 만족시킬 수 있는 기능을 부여하는 것
2) 탄소 원자가 육각형 구조로 배열된 형태로 표준 조건에서 가장 안정적인 형태의 탄소를 말한다.
탄소섬유를 활용한 부력체 모형 ⓒ한국생산기술연구원
현재 해상태양광 발전 부력체로는 스티로폼이나 원통형 중공(中空)용기가 사용된다. 하지만 이는 미세플라스틱을 배출하는 등 환경오염을 유발할 뿐만 아니라 가혹한 해상 환경에서 버티기 어려운 소재들이다. 유리섬유 복합재가 활용되기도 했으나 가격 경쟁력에 있어서 아쉬움과 유리섬유 용출 가능성이 존재했다. 김광석 수석연구원은 저품위 탄소섬유를 적용한 부력체는 저렴한 가격으로 제조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내구성과 내후성, 내염수성이 우수해 해상 환경에 특화되었다고 전했다.
“연구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이 내구성입니다. 파도, 바람, 염수 등 수많은 요소들이 존재하는 해상 환경에서 해상태양광 발전 시설물들은 극한 상황을 대비해야 하는데요. 성능이 강화된 저품위 탄소섬유를 이용하면 신품 탄소섬유 대비 20% 이상의 원가절감으로 가격 경쟁력이 확보될 뿐만 아니라 내구성과 내후성, 내염수성도 우수한 해상태양광 부력체를 만들 수 있게 되죠.”
새만금방조제 내해 실증 테스트 현장모습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저품위 탄소섬유를 활용한 해상태양광 부력체는 단 9개만으로 440W 급의 태양광 패널 27개를 버틸 수 있다. 또한 파도 높이가 2m에 달해도 문제없이 잘 태양광 패널을 지지할 수 있으며 실제 해상 환경 고려 시 20년간 사용할 수 있다는 안정성 점검도 마쳤다. 해수 수조에서 간이 실증 테스트를 완료하고 현재는 시제품으로 제작돼 전라북도 새만금방조제 내해에서 실증 테스트를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김광석 수석연구원 연구팀의 연구 결과는 생활·환경·의료·보건 관련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저널인 ‘iScience(아이사이언스, IF 6.107)’에 게재되는 성과를 얻기도 했다.
“보통 부력체의 사용기간이 끝나면 폐기하는 수순을 밟게 됩니다. 그런데 낮은 품질의 탄소섬유를 활용한 부력체는 사용기간 이후에 동일한 기술을 활용하면 다시 품질을 높여 또 다시 사용할 수 있죠. 이러한 특성이 향후 환경을 보호하는 데 중요한 기술이 되기에 아이사이언스에서도 주목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아직 상용화되기까지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지금까지의 연구 결과는 실험실 단위에서 진행된 것이기 때문. 탄소섬유 표면개질을 대용량으로 할 수 있는 장치 개발 그리고 이를 적용한 복합재의 환경적 측면, 생물학적 측면 등에서의 수많은 검증이 뒤따라야 한다. 앞으로 김광석 수석연구원은 이러한 부분들을 중점으로 연구 개발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탄소중립 시대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친환경 에너지. 김광석 수석연구원 연구팀의 연구가 탄소중립 시대를 앞당길 구원투수가 되기를 응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