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의약품안전처는 ‘한국 사람이 음식을 섭취하면서 먹는 미세플라스틱은 하루 16.3개 정도’라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이는 해조류와 젓갈류 등을 통해 도출된 결과이다.
이렇게 섭취한 미세플라스틱이 몸속에 쌓인다면, 과연 사람은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생산기술연구원(이하 ‘생기원’) 조한철 수석연구원이 나섰다.
조 수석연구원팀이 개발한 친환경적인 미세플라스틱 제거기술을 소개한다.
(왼쪽부터) 생기원 조한철 수석연구원과 박병건 학생연구원.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아침에 일어나면 세안제로 세수하고 치약으로 양치하며 샴푸로 머리를 감는다. 그리고 화장품을 바른 뒤 옷을 갈아입고 집을 나선다. 집에 돌아오면 입었던 옷은 세탁세제로 빨래하고, 저녁을 먹은 다음에는 수세미를 이용해 설거지한다. 이처럼 당연한 일상에서 우리도 모르는 사이 미세플라스틱을 바다로 흘려보내고 있다.
바로 세안제, 치약, 화장품, 세제, 수세미, 의류 등에 포함된 미세플라스틱이 생활하수와 함께 바다로 흘러들어가고 있는 것. 그리고 바닷속 해양생태계 생물들이 이를 섭취하고, 우리가 그 해양생물을 섭취함으로써 몸속에 미세플라스틱이 차곡차곡 축적돼 왔다.
“미세플라스틱은 인체의 다양한 장기에서 발견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태반, 그리고 건강한 성인의 혈액에서도 미세플라스틱이 발견되었죠. 미세플라스틱을 통해 인체 내 환경호르몬 수치가 높아지면 면역 질환이나 호르몬에 민감한 장기에서 유방암, 전립선암, 갑상선암, 자궁암 등의 발병 확률이 높아지게 됩니다. 이처럼 미세플라스틱은 건강과 직결되기 때문에 더욱 경각심을 가져야 합니다.” 조 수석연구원은 이번 연구 개발에 나선 계기를 이렇게 소개했다.
하지만 미세플라스틱은 5mm 이하의 입자이며, 그 안에는 5mm보다 작은 1μm 이하 초미세플라스틱도 존재해 정수 과정에서 100% 제거하기란 쉽지 않다. 1μm는 흔히 사용하는 A4용지 두께의 1/100에 해당하는 크기로 눈으로는 절대 확인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러한 1μm 이하의 입자를 여과하기 위해선 정수 시간이 오래 걸릴 뿐만 아니라 고가의 필터를 사용해야 한다. 하지만 초미세플라스틱을 제거해야 한다는 법적 규정이 없어 생수를 제조할 때 별도의 정수 과정을 거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조 수석연구원 팀은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일반적인 물리적 여과 기술이 아닌 새로운 접근 방식을 통해 ‘친환경 미세플라스틱 제거기술’ 개발에 성공했다.
(왼쪽부터) 실험 중인 생기원 조한철 수석 연구원과 박병건 학생연구원.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조 수석연구원 팀은 높은 전압을 이용하면 ‘전기영동 증착 효율을 높일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나노입자는 물속에 분산되어 있을 때 제타전위(Zeta Potential)를 가지게 된다. 즉 +와 -의 전기적 특성을 띤다는 것. 나노입자가 있는 물속에 +와 - 전기장을 발생시키면 나노입자가 반대 전극으로 이동하는 ‘전기영동’ 현상이 나타난다. 이를 활용하여 나노입자를 기판에 증착시키는 EPD(전기영동 증착, Electrophoretic Deposition) 기술을 개발했다. 그리고 이 기술 안에는 나노물질을 원하는 자리에 원하는 크기로 배열하는 기술도 숨어있다. 미세플라스틱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성능을 가시화하기 위해 형광 물질이 코팅된 나노 입자를 물속에서 제거하는 실험을 진행하기도 했다. 이를 통해 기판 안에 다양한 색의 형광 입자를 EDP기술로 제거하는 동시에 원하는 이미지로 배치까지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했다.
한국생산기술연구원 동남본부 정밀기계공정제어연구그룹 조한철 수석연구원. ⓒ한국생산기술연구원
하지만 한 가지 문제점이 있었다. EPD는 전기를 기반으로 작동되는데, 이를 사용해야 할 하수처리장에는 전기를 연결하기 어렵다는 것. 하수처리장 한가운데 EPD를 설치한다고 가정해보자. 물 위에 떠 있는 EPD를 작동시키기 위해서는 멀리서부터 전기를 끌어와야 한다. 하지만 하수처리장의 규모는 굉장히 크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전기를 끌어오기는 어렵다. 이에 조 수석연구원은 운동에너지를 전기에너지로 전환할 수 있는 ‘마찰대전 나노 발전기(Triboelectric Nano Generator)’를 활용하자는 생각을 했다.
“하수처리장은 물살이 빠르기 때문에 운동에너지를 발생시킬 수 있습니다. 여기에 마찰대전 발전기를 설치하면 운동에너지가 전기에너지로 전환되면서 전기가 생산되는 것이죠.”
물속 형광물질이 코팅된 나노입자를 EDP 기술로 제거·배열한 이미지.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사실 마찰대전 발전기의 경우 수천 V의 높은 전압을 발생시키지만, 전류는 낮은 편이다. 그래서 마찰대전 발전기로 생산된 전기는 물속에서 사용하더라도 걱정이 없다. 전류가 낮기 때문에 물속 생물들을 위협할 일도 없으며, 사람이 실수로 물속에 들어가더라도 전기를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EPD의 효율은 전압의 영향만 받을 뿐 전류와는 무관하다. 즉 마찰대전 발전기는 EPD 전원으로 안성맞춤인 셈이다.
현재까지 개발한 기술을 기반으로 실험을 진행한 조 수석연구원팀. 그 결과 미세플라스틱은 물론, 연마제에 쓰이는 SiO2(이산화규소) 나노입자, 썬크림에 사용되는 ZnO(산화아연) 나노입자, 중금속 나노입자 등 대부분의 마이크로 나노입자가 제거됨을 확인했다. 이것이 바로 다양한 환경에 쉽게 적용 가능하며 제거 효율도 뛰어난 ‘친환경 미세플라스틱 제거기술’이다.
Nano Energy (IF:19.069).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이번 기술개발은 에너지 분야 학술지 Nano Energy(Impact factor 19.069) 온·오프라인 판(Toxic Micro/Nano Particles Removal In Water Via Triboelectric Nanogenerator)에 게재되었다. 조 수석연구원은 “연구자로서 기쁘기도 하고 새로운 걸 창출했다는 마음에 보람도 느끼고 있습니다. 또한 함께 연구해준 팀원 박병건 학생연구원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학생연구원이 멋지게 사회로 출발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된 것 같아 기분도 좋습니다.”라고 전했다.
미세플라스틱 제거 기술이 개발되었다는 소식에 정수기 제조업체와 의류 업체에서 함께 연구하자는 연락이 쏟아지고 있다. 특히 의류를 제작할 때 미세플라스틱이 발생하기 때문에 기업의 관심을 끌 수밖에 없는 연구였다고 한다.
세계적으로 환경과 건강을 위협하는 미세플라스틱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마찰대전 발전기의 ‘낮은 전류’라는 단점보단 ‘생명을 해치지 않고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에 주목한 조한철 수석연구원. 그의 연구를 통해 미세플라스틱 걱정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미래를 기대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