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디스플레이가 반으로 접히는 스마트폰이 등장하면서 세계인의 이목이 집중됐다.
정체됐던 스마트폰 시장에 새로운 패러다임이 열린 것이다.
여기에 적용된 차세대 디스플레이가 바로 ‘플렉시블 디스플레이’다.
그 적용 범위는 무궁무진해서 향후 태블릿, TV와 같이 대형 사이즈 전자 기기에도 접목될 전망이다.
변화가 예고된 미래를 미리 준비하고 있는 한국생산기술연구원(이하 ‘생기원’) 청정기술연구소 친환경융합소재연구부문 홍성우 수석연구원을 만나보았다.
생기원 청정기술연구소 친환경융합소재연구부문 홍성우 수석연구원.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최근 몇 년 사이, 스마트폰 시장에 새로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바로 반으로 접히는 ‘폴더블 스마트폰’이 등장한 것. 평면 디스플레이 스마트폰에 익숙해져 있던 사람들의 상식을 깨는 신선한 충격을 안겨 주었다. 이러한 폴더블 스마트폰에는 기존 평면 디스플레이와 전혀 다른 ‘폴더블 디스플레이’가 접목되어 있다.
“폴더블 스마트폰의 필수요건은 반복적으로 여닫아도 제품의 상태가 유지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기존 평면 디스플레이에 사용되어왔던 유리 기판을 그대로 적용할 수 없고,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전용 디스플레이 광학 소재 개발이 필요한 것이죠.”
폴더블 디스플레이 광학 소재의 핵심 요건은, A4 용지 묶음을 반으로 접었을 때 A4 용지들이 밀려나가는 현상으로 쉽게 설명할 수 있다. A4 용지 묶음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디스플레이를 반으로 접게 되면 접히는 안쪽에는 수축되는 압축력이 발생하고, 접히는 바깥쪽에는 늘어나는 인장력이 발생한다. 따라서 반복적으로 디스플레이를 여닫으면 안쪽과 바깥쪽에 상당한 수준의 피로도가 쌓이게 되어 주름, 파손 등의 불량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따라서 굴곡 신뢰성은 폴더블 디스플레이 광학 소재가 꼭 갖춰야 하는 필수 요건인 것이다.
고강도 투명 유연 광학 필름 연구에 한창인 홍성우 수석연구원과 연구진.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이에 홍성우 수석연구원은 굴곡 신뢰성이 확보된 ‘고강도 투명 유연 광학 필름’ 개발에 나섰다. 현재 폴더블 디스플레이 광학 소재는 크게 2가지로 나뉘는데, 유리 기반의 ‘UTG(Ultra Thin Glass)’와 필름 기반의 ‘고강도 투명 유연 광학 필름’이다. 이 중에서도 연구팀은 필름 기반의 폴더블 디스플레이 광학 소재 개발에 나섰다. 그 이유는 고강도 투명 유연 광학 필름에 가장 적합한 소재가 ‘불소계 폴리이미드’인데, 이 소재가 일본의 수출 규제 3대 품목 중 하나라는 것이 크게 작용했다. 플렉시블 디스플레이 개발은 물론, 부가가치가 높은 핵심 소재인 불소계 폴리이미드 소재의 내재화·국산화를 통한 소재 자립화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연구 개발 과정을 설명하고 있는 홍성우 수석연구원. ⓒ한국생산기술연구원
그렇다면 폴더블 디스플레이의 핵심 소재인 불소계 폴리이미드는 정확히 무엇일까? 엔지니어링 플라스틱은 일반적인 플라스틱 대비 내열성, 내화학성, 기계적 물성이 향상된 플라스틱 소재를 말한다. 그리고 엔지니어링 플라스틱 중 폴더블 디스플레이에 가장 부합한 소재가 바로 폴리이미드인데, 위에서 언급한 많은 장점들에도 불구하고 치명적인 단점도 존재했다.
“폴리이미드 내부 구조를 살펴보면 사슬 간 강력한 전하 이동 복합체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이 복합체는 빛을 쉽게 흡수할 수 있는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일반적인 폴리이미드 필름은 노란색을 띠는 문제점이 있었습니다.”
개발한 고강도 투명 유연 광학 필름(좌), 기존의 폴리이미드(우).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전자 기기의 디스플레이가 노란색을 띠면 구매하고자 하는 소비자의 욕구는 사라지기 마련. 이에 홍 수석연구원은 폴리이미드의 단점을 극복하는 연구에 돌입했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폴리이미드 사슬 간 상호 작용력을 낮추면 되는데, 이를 위한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덩치가 큰 탄화 불소 그룹을 도입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폴리이미드 사슬 간 상호 작용력이 낮아져서, 전하 이동 복합체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아 노란색이 사라지고 투명해지는 것이다. 이렇게 제조된 투명성이 확보된 폴리이미드는 불소 원자를 포함하기 때문에 ‘불소계 폴리이미드’라고도 불리게 된다. 다만 전하 이동 복합체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으면 그에 대한 반대급부로 폴리이미드의 장점이었던 기계적 물성이 하락하게 된다. 이러한 특성을 폴리이미드의 광 특성 및 기계적 물성 간 트레이드-오프 현상이라고 부르며, 이러한 트레이드-오프 현상을 극복함으로써 두 가지 특성을 동시에 확보하는 것이 이번 기술 개발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위해 기존 불소계 폴리이미드의 전하 이동 복합체의 미스매칭을 유도하는 전략을 이용하여 먼저 향상된 광 특성을 확보했다. 그 후 두 가지 종류의 물리적 이차 결합력, 즉 다중 수소 결합 상호 작용력과 다중 금속 착물 상호 작용력을 폴리이미드 사슬에 도입했다. 그 결과 미스매칭된 전하 이동 복합체의 상호 작용력을 증폭시킴으로써 우수한 기계적 물성까지 동시에 확보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20만회가 넘도록 여닫는 과정을 거쳤음에도 초기 표면 품질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뛰어난 굴곡 신뢰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
결국 필름 제조 과정에서 미스매칭된 전하 이동 복합체 내 상호 작용력을 증폭시킴으로써 기존 불소계 폴리이미드의 장점을 극대화하고, 단점은 줄인 고강도 투명 유연 광학 필름이 완성되었다. 그 노력을 인정받아 세계 최고 수준의 광 특성과 기계적 물성을 동시에 가지는 광학 필름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2022년 초, 국제 저널인 ‘Advanced Functional Materials(2022, 32, 2111040)’에 고강도 투명 유연 광학 필름 논문을 게재하였습니다. 이와 더불어 연구의 우수성을 인정받아 저널 커버로 선정되는 영예도 얻게 되었습니다.”
폴더블 제품들은 이제 막 출시되고 있다. 그렇기에 앞으로 여러 제품군이 시중에 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불소계 폴리이미드 기반 고강도 투명 유연 광학 필름’은 폴더블 제품에 들어가는 핵심 소재이기 때문에 연구 가치가 충분하다. 더 나아가 추후 폴더블을 넘어 롤러블, 웨어러블, 스트레처블과 같은 제품들이 이어서 개발될 것으로 예상된다.
홍성우 수석연구원은 “웨어러블이나 스트레처블(Stretchable)1) 디스플레이 제품의 경우 고강도 투명 유연 광학 필름이나 UTG 같은 소재로 개발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며 “추후 고강도 투명 유연 ‘신축’ 광학 필름을 개발하여 새로운 제품군에 사용될 수 있도록 연구를 지속할 것”이라고 전했다.
홍성우 수석연구원의 이번 연구는 국내 주력 산업 중 하나인 디스플레이 핵심 소재의 자립화를 달성했다는데 의미가 깊다. 앞으로도 세계 시장을 선점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데 모든 연구 역량을 집중할 것이라고 전하는 홍 수석연구원의 다음 연구가 기대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