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생산기술연구원 AI·로봇연구부문 이승준 선임연구원
LS 일렉트릭 자동화 솔루션 연구소 김익환 매니저
디케이텍 인더스트리 이성근 전무 , 김대혁 책임
물건을 고르는 순간보다 구매한 물건을 뜯어볼 때 우리는 희열을 느낀다. 그래서 언박싱 콘텐츠는 언제나 인기다.
그런데 몇 년 전 신차를 구매한 사람들은 그 기쁨을 제때 누리지 못했다.
신차 구매 후 실물과 영접하기까지 1년 이상 기다렸던 것.
이는 자동차 수요는 많은데 일본으로부터 부품 조달이 제때 안 되어 생산에 차질을 빚었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를 예견했던 것일까.
때마침 10여 년 동안 기술개발에 공들였던 LS 일렉트릭이 한국생산기술연구원(이하 ‘생기원’)과 만나면서 눈부신 성과를 이루었다.
자동차는 엔진으로부터 동력을 공급받아 움직인다. 그리고 엔진은 흡입, 압축, 폭발, 배기의 과정을 한 주기로 왕복운동을 하면서 에너지를 얻는다. 이때 엔진을 운동시키는 게 바로 모터이다. 자동차를 생산할 때 바로 이 부분에서 문제가 발생하면서 생산이 늦어졌다. 모터를 생산할 수 있는 시스템과 설비가 대부분 독일, 미국, 일본 등 자동차로 유명한 국가의 제품인데 우리나라는 무역장벽이 있었던 일본의 제품을 가장 많이 사용했기 때문.
소·부·장 산업의 국가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국산화가 답이라며 전 산업이 국내 기술력을 확보하기 위해 집중했다. LS 일렉트릭 역시 국내 생산라인 시스템의 국산화를 위해 10여 년 이상 투자해왔다. 하지만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미 국내 기업들은 주로 외산 시스템과 제품을 활용해왔기 때문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생기원과 디케이텍 인더스트리, 현대 위아, 포원 시스템 등이 힘을 모았다.
간절하게 원하면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LS 일렉트릭을 주축으로 한 컨소시엄은 제조업의 핵심 장비인 국산 PLC 제어기를 통해 전기차 및 하이브리드 자동차 부품 생산 장비, 섬유 염색 공정 자동화 장비의 국산화에 성공했다. 특히 LS 일렉트릭의 제어기는 현대자동차 캐스퍼 생산 라인에 성공적으로 도입함으로써 국내에서 개발한 부품과 기술로 자동차를 생산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해냈다.
LS 일렉트릭 김익환 매니저. ⓒ한국생산기술연구원
디케이텍 인더스트리 이성근 전무. ⓒ한국생산기술연구원
디케이텍 인더스트리 김대혁 책임.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생기원 이승준 선임연구원. ⓒ한국생산기술연구원
RAPIEnet 기반 ‘PLC 제어기’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생기원 이승준 선임연구원. ⓒ한국생산기술연구원
4차 산업혁명 시대에서 초연결을 기반으로 한 인공지능, 빅데이터 등의 디지털 기술은 빼놓을 수 없다. 이 기술은 제조업에도 적용됨으로써 제조·생산 라인을 통합제어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해졌다. 이에 LS 일렉트릭은 네트워크 디바이스인 RAPIEnet(이하 ‘라피넷’)을 기반으로 한 PLC 제어기 연구개발에 나섰다.
PLC 제어기란 공장 내 여러 기기에 제어명령을 내리는 설비를 말한다. 현재 국내 많은 부품 제조 공장은 외산 PLC 제어기를 주로 사용한다. 그리고 제어기에 맞는 부품 역시 모두 외산 제품이다. 만약 부품 조달이 제때 이뤄지지 않거나 장치에 문제가 발생하면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해당 기업의 피드백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이런 과정 때문에 공장은 납기일을 맞추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더구나 문제 파악을 위해 제공하는 우리 기업의 기술과 데이터가 외부로 유출될 위험도 있다. 이는 국가 경쟁력과도 직결되는 문제이므로, 제조업에서 소·부·장의 국산화는 반드시 필요한 상황.
RAPIEnet 기반 ‘PLC 제어기’. ⓒ한국생산기술연구원
LS 일렉트릭은 10여 년 전부터 이더넷 기반의 통신 기술인 ‘라피넷’을 개발해왔고, 국제표준 기술로 인증도 받았다. 이제 남은 것은 LS 일렉트릭의 기술이 제조라인에 적용되었을 때 발생하는 문제를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대처할 수 있는 기술을 갖추는 것. 이때 생기원의 지원으로 PC를 통해 실시간으로 데이터를 확인하고 전달할 수 있는 ‘모니터링 기술’을 개발하고 성능을 검증하였다. 이로써 LS 일렉트릭은 PLC 제어기의 데이터를 라피넷을 통해 PC로 전달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해냈다.
현재 LS 일렉트릭의 PLC 제어기는 디케이텍 인더스트리를 비롯한 국내 기업에 도입하여 실증까지 마쳤다. 디케이텍 인더스트리 이성근 전무는 “기존에 사용했던 외산제품과 비교했을 때 그 성능과 효율성은 별반 다르지 않다”며 “다만 익숙하지 않을 뿐”이라고 말했다. 익숙하지 않은 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으며 오히려 문제 발생 시 빠르게 대처할 수 있어 이득이라고 덧붙였다.
앞으로 더 많은 기업체에 PLC 제어기가 도입되려면 우선 구조적인 문제부터 해결되어야 한다. 국내 제어기 기술 교육 부분에서 대부분 외산 PLC 제어기를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생기원 이승준 선임연구원은 국산화 시스템이 제대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교육부터 국산 제품을 적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는 아직 외산 제품과 시스템에 더 익숙합니다. 완성품을 제조하는 기업 중에서는 아직 외산 시스템으로 만든 부품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학교에서도 외산 제품을 교육하게 되고, 학생들은 당연히 외산 제품에 익숙해지는 겁니다. 그런 점에서 디케이텍 인더스트리의 국산화 시스템 도입은 매우 용기 있는 선택입니다.”
RAPIEnet 기반 ‘PLC 제어기’. ⓒ한국생산기술연구원
PLC 제어기에 연결된 부품들.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실제 하이브리드 권선 생산 장비에 적용된 국산 PLC 제어기. ⓒ한국생산기술연구원
PLC 제어기 국산화의 장점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모든 부품이 국산품으로 대체 가능해졌기 때문에 국내 부품 기업들이 함께 성장할 기반이 마련된 것. 어떻게 보면 PLC 제어기 하나 국산화했을 뿐인데 매부 좋고 아우 좋은 일이 생긴 셈이다.
현재 국산 PLC 제어기 기술은 다양한 생산 공정에 적용 사용하고 있는 상태이나, 앞으로 미래 산업의 중심인 전기 자동차 생산 공정, 배터리 생산 공정, 반도체 및 스마트 팜 등 다방면에도 활용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또한 보통 설비를 한 번 설치하면 10년 이상 사용하기 때문에 산업 현장에 많은 변화를 겪고 있는 현 시점이 굉장히 중요한 시기이다.
LS 일렉트릭 김익환 매니저는 “우리 기술을 더 많은 산업 현장에 적용하기 위해 신규 설비부터 도전하고자 한다”며 “새로운 분야로 점점 그 범위를 확대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PLC 제어기의 국산화가 아직 완벽하게 완성되었다고 볼 수는 없다. 앞으로 더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하다 보면 점차 개선해야 할 점이 눈에 보일 것이고, 그렇게 개선하다 보면 곧 완성 단계에 이르지 않을까.
“PLC 제어기의 브랜드가 곧 그 국가의 기술력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미국하면 로크웰 오토메이션, 독일하면 지멘스, 일본하면 미쓰비시전기를 떠올리는 것처럼 대한민국하면 LS 일렉트릭을 떠올릴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생기원 역시 LS 일렉트릭의 여정을 함께할 예정이다. 제어기를 바탕으로 디지털 전환을 하고, 인공지능 기술을 적용해 국내 중소기업으로 확대해 나간다는 것도 꿈은 아니다. PLC 제어기의 국산화를 시작으로 국내 제조업계가 다시 부흥할 날이 기대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