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에는 많은 사람들이 ‘로봇’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마블 영화 속 ‘아이언맨’을 떠올릴 것이다.
인류를 구한 영웅이지만 ‘아이언맨’에게서 인간적인 유대감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너무나도 딱딱해 보이는 외양 때문이다.
이러한 로봇의 단점을 극복하고 물리적, 심리적으로 인간과 상호작용하기 위한 기술을 ‘소프트 로보틱스’라고 한다.
소프트 로보틱스 기술을 통해 인간과 로봇이 공존하는 시대를
만들어 나가고 있는 한국생산기술연구원(이하 ‘생기원’)의 연구자들을 소개한다.
로봇은 아무리 잘 만들어도 로봇이었다. 외관이 딱딱하고 움직임이 부자연스럽기 때문. 그런데 로봇에 대한 편견이 완전히 깨졌다. 로봇의 외관이 푹신하고, 로봇의 관절 하나하나를 부드럽게 움직여주는 소프트 로보틱스 기술 덕분이다. 그리고 로봇에 이 기술을 적용하면 로봇의 발전은 무궁무진해질 것이라는 게 이동욱 수석연구원의 생각이다.
“가까운 미래에 인간의 육체는 물론 정서까지 돌봐주는 케어로봇이 등장해 인간의 삶의 질을 높여줄 것입니다. 쉽게 말해 육체적 케어로봇은 장애인과 노약자 등에게 약, 식사 등을 전달하는 간호 인력의 단순노동을 대신하고 정서적 케어로봇은 아이들과 혼자 계신 분들의 마음을 위로해줄 수 있기 때문이죠. 두 종류의 케어로봇 모두 사람과의 원활한 상호작용을 위해 외관은 부드럽고, 움직임도 자연스러워야 합니다. 이 조건을 모두 충족하기 위한 기술이 바로 ‘소프트 로보틱스’ 기술입니다. 케어로봇의 기본, 즉 뿌리가 되는 기술인 셈이죠.”
로봇이 일상과 가까워진 만큼 사람과 친숙해질 필요가 있다. 그 역할을 소프트 로보틱스 기술이 해줄 것으로 기대된다.
‘소프트 로보틱스’ 기술을 개발한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연구진.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케어로봇은 인간과의 접촉이 기본이기 때문에 앞서 이동욱 수석연구원이 언급한 조건들을 갖춰야 한다. 그래서 이 수석연구원을 포함한 7명의 연구자들이 한 팀을 이뤄 소프트한 케어로봇 개발에 한창이다. 과연 얼마나 흥미로운 기술들일까.
움직임이 부자연스러운 로봇은 이제 없다! - 이동혁 수석연구원, 김시형 선임연구원
이동혁 수석연구원.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사람의 손과 비슷한 형태의 로봇 손.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산업현장에서 사용하는 로봇의 손을 떠올려보자. 대부분 네모반듯한 상자를 잡을 수 있게 변형된 집게 모양이다. 산업현장에서 물건을 들어 올리고 이동시킬 수 있게 최적화된 형태이지만, 사람을 돌볼 때에는 적합하지 않다. 사람과 일상을 함께 보내려면 다양한 형태의 물체를 잡거나 유연한 동작을 구현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동혁 수석연구원은 사람의 손과 비슷한 형태의 로봇 손을 제작했다.
“사람 손과 비슷하게 만들기 위해 손 마디가 움직일 수 있도록 구현했습니다. 또한 로봇 손이 물체의 강도에 따라 스스로 힘을 조절하는 알고리즘을 적용해 안전성을 확보했습니다. 앞으로는 로봇 손에 소프트 촉각 센서를 부착해 더욱 더 사람의 손과 비슷하게 만들 예정입니다.”
아무리 로봇 손을 사람과 비슷하게 만들더라도 다른 로봇처럼 부피가 크고 딱딱하면서 움직일 때마다 소음이 발생한다면 친근하게 느끼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김시형 선임연구원은 로봇 손을 정말 사람 손처럼 여겨지도록 섬유형 인공근육을 개발했다.
“로봇은 모터로 구동됩니다. 그러나 모터는 부피가 크고 딱딱하며 구동 시 소음까지 발생하죠. 그래서 이를 대체하고자 탄소나노튜브를 기반으로 한 섬유로 사람의 근육 형태와 유사한 인공근육을 개발하였습니다. 인공근육에 전압을 가하면 사람의 근육처럼 수축-이완하게 됩니다. 낮은 전압으로도 구동이 가능하게 제작해 사람과 접촉하는 과정에서의 위험성을 최소화했습니다. 이로써 로봇의 자연스러운 움직임이 가능해졌고, 모터 소리로 인한 청각적인 이질감도 줄일 수 있었습니다.”
김시형 선임연구원과 연구진.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섬유형 인공근육. ⓒ한국생산기술연구원
만약 이동혁 수석연구원이 개발한 로봇 손에 김시형 선임연구원의 인공근육을 적용한 손이 있었다면 영화 <내부자들>의 이병헌도 좀 편하지 않았을까.
상황에 맞는 반응을 보이는 반려동물 로봇 - 고재훈 수석연구원, 정우석 수석연구원
2022년 현재, 대한민국에 반려동물을 가족처럼 생각하는 ‘펫밀리(Pet+Family)’가 무려 1,500만 명에 달한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반려동물을 키울 때 느끼는 정서적 안정감은 비슷하다. 그래서 마음이 아프거나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치유의 한 방법으로 반려동물을 권하기도 한다. 하지만 여건상 반려동물을 키울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들을 위해 고재훈, 정우석 수석연구원이 반려동물 로봇을 개발 중이다.
반려동물 로봇은 촉각센서가 부착된 부드러운 몸, 디스플레이로 표현한 눈, 열 센서가 숨겨진 코, 소프트 텐던 액추에이션 기술이 적용된 꼬리로 이루어져 있다. 먼저 고재훈 수석연구원은 섬유를 기반으로 한 촉각센서를 반려동물 로봇에 적용했다.
고재훈 수석연구원.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촉각 센서와 열 센서가 적용된 반려동물 로봇.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애정을 담아 반려동물 로봇을 쓰다듬으면 촉각센서가 그것을 인식합니다. 그러면 디스플레이로 된 눈이 기분 좋은 표정을 짓습니다. 반면 반려동물 로봇을 던지거나 강한 압력으로 누르면 언짢은 표정을 짓게 됩니다. 촉각센서로 반려동물 로봇의 생생함을 더한 것이죠.”
반려동물의 기분은 꼬리로도 표현된다. 개가 기분이 좋을 때 꼬리를 힘차게 흔들고, 무서울 때 다리 사이로 꼬리를 말아 넣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이를 구현하기 위해 정우석 수석연구원은 소프트 텐던 액추에이션 기술을 반려동물 로봇에 접목시켰다.
“반려동물의 꼬리는 아주 유연하게 움직입니다. 반려동물 로봇 역시 동일한 움직임을 주고자 와이어를 활용하여 소프트 텐던 액추에이션 기술을 적용했습니다. 와이어를 사용함으로써 보다 유연하게 움직일 수 있고, 길이를 조절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즉 웰시코기 같은 짧은 꼬리도 반려동물 로봇에 구현할 수 있는 거죠.”
소프트 텐던 액추에이션 기술.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정우석 수석연구원. ⓒ한국생산기술연구원
독거노인의 고독사를 예방하고, 아이들의 놀이를 도와주는 반려로봇이 인기다. 하지만 반려로봇도 결국 로봇이란 인식 때문에 정서적 유대감을 느끼기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만약 두 연구원의 기술이 접목된 반려동물 로봇이 완성된다면 이제 반려로봇도 반려동물과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소프트 로보틱스 기술로 건강한 신체 케어도 가능! - 조정산 수석연구원, 이수웅 수석연구원
조정산 수석연구원.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웨어러블 로봇.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어느 날, 조정산 수석연구원은 물류창고에서 무거운 짐을 들어 나르는 근로자와 마주쳤다. 근로자는 작업을 수월하게 도와주는 웨어러블 로봇을 착용한 상태였다. 하지만 기존 웨어러블 로봇은 짐을 나를 때 도움을 받을 수는 있었지만 부피가 너무 크고 딱딱해서 지게차를 운전할 때 몹시 불편했다. 그렇다고 입고 벗는 게 편한 것도 아니어서 상황에 따라 갈아입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었다. 이에 조정산 수석연구원은 부피가 작고, 가벼우면서도 움직임이 자유로운 웨어러블 로봇을 제작했다.
“쉽게 끊어지지 않는 특수 제작용 실과 작은 사이즈의 구동기, 착용이 간편한 조끼 형태의 웨어러블 로봇을 제작했습니다. 웨어러블 로봇이 유연해지고 작아짐으로써 일상생활에서 부담 없이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죠. 추후 의료기기로 활용도 가능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이수웅 수석연구원의 영상 기반 소프트 촉각센서도 의료·재활 로봇분야에서 활용하기에 좋은 기술이다. 영상 기반 소프트 촉각센서는 천, 고무, 가죽 등 여러 소재에 적용할 수 있으며 영상을 통한 3차원 표현이 가능하다. 즉 센서가 적용된 천을 손가락으로 눌렀을 때 어느 정도의 압력인지, 어느 위치를 누르는지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다.
이수웅 수석연구원은 “손가락을 다친 환자 치료 시 영상 기반 소프트 촉각센서를 활용하면 상대적으로 힘이 덜 들어가는 부분을 의사가 영상으로 확인할 수 있다”며 “환자의 상태를 문진이 아니라 시각으로 확인할 수 있으므로 보다 정확한 진단과 재활 방법 제안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로봇에 적용된 신기술이라고 하면 우선 ‘비싸다’라는 인식이 강하다. 그런데 조정산, 이수웅 수석연구원이 선보인 기술은 그렇지 않다. 다른 소프트 로보틱스 기술에 반해 저렴한 가격으로 제조가 가능한 것은 물론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소재이기도 하다. 두 연구자의 모두를 위한 로봇 기술이 상용화된다면 보다 건강한 세상이 펼쳐지지 않을까.
이수웅 수석연구원.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영상 기반 소프트 촉각센서.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이동욱 수석연구원.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생기원 연구자들이 소프트 로보틱스 연구를 시작한 지 벌써 7년.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그 시간 동안 그들이 개발한 소프트 로보틱스 기술은 세계 로봇 기술 강국인 미국, 일본과 비슷한 수준까지 올라왔다. 이동욱 수석연구원은 “우리의 높은 기술 경쟁력이 자랑스럽다”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최근 2~3년간 수많은 기술이전과 후속연구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이럴 때마다 보람찬 마음을 숨길 수 없더라고요. 또 이를 계기로 저희가 개발한 로봇들이 시장에 공개될 그날을 기다리며 연구에 여념이 없습니다. 열심히 연구해 최고의 로봇기술을 보유한 생기원 그리고 로봇 강국 대한민국이 되는 데 기여하고 싶습니다.”
이번 연구에 참여한 연구자들은 각자의 기술을 퍼즐 조각 삼아 하나의 멋진 작품을 함께 완성해 나가는 중이다. 그 속도는 조금 다를지언정 완벽한 케어로봇을 완성하겠다는 목표는 확고하다.
“케어로봇을 만들기 위해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들이 머리를 맞댔습니다. 그래서 케어로봇은 ‘모든 기술의 집약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로봇의 움직임을 부드럽게 만들 수 있는 연구자부터 외형의 부드러움을 더하는 섬유, 로봇과의 상호작용을 돕는 각종 센서까지. 우리 연구진은 케어로봇 하나만 바라보고 각자의 위치에서 열심히 연구했습니다. 그 성과물을 만날 날도 머지않았습니다. 지금까지 고생하셨고, 앞으로도 고생해주실 연구자들께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우리의 케어로봇으로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해봅시다!”
한자리에 빙 둘러앉아 로봇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너무도 행복해 보이는 생기원 소프트 로보틱스 연구자들. 그들이 세상에 공개할 케어로봇이 기대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