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占쏙옙占쏙옙占� 나의 몸은 거대한 사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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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다. 그렇지 않은가? 나만의 생각과 세계관, 의지를 갖고 내 삶을 살아가는 개체이니 말이다. 글쎄, 보는 각도에 따라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그 이유는 나의 몸 속에는 내가 아닌 것이 아주 많기 때문이다. 바로 우리 몸을 터전으로 살아가는 세균이 그들이다.
이제는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미생물에 대한 상식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 병을 일으키고 옮기는 나쁜 균들이 있는가 하면, 요구르트의 대중화로 유산균 같은 이로운 미생물도 있다는 것을 누구나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체 얼마나 많은 균들이 내 속에 살고 있는 것일까? 놀랍게도 나를 이루고 있는 세포의 수 30조 개보다도 더 많은 물경 39조 개에 달한다. 숫자로만 따지면 내 몸의 주인이 과연 나인지 의문이 생길 지경이고, 무게로 따져도 킬로그램 단위다.
이 미생물들은 철저히 내 몸 안에 형성된 환경과 생태계에 의존해서 살고 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이 글을 쓰는 나의 존재는 물론 내 몸 바깥 세상에 대한 아무런 인지도 없다. 의식적 인지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생존을 위한 본능적 인지조차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런 그들에게 나는 존재하는 모든 것이지만 동시에 존재가 느껴지지 않는 자연 그 자체다.
이런 미생물의 성격도 다양하기 그지없다. 들고 나는 각종 병균들 외에 우리 몸을 기본 터전으로 살아가면서 ‘나쁜 균’의 대명사로 불리는 것이 바로 이름처럼 대장에서 서식하는 대장균이다. 하지만 대장균조차 실은 그 자체로는 해롭지 않으며, 그렇기 때문에 우리 몸의 강력한 면역 시스템 하에서 세포들과 공존하며 살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대장균이 장내에서 활발히 살아야 그 속 생태계를 파괴하려 드는 외부 독한 균들의 번식을 제어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식품에서 대장균 검출을 문제 삼을까? 일단 대장균이 장 속에 지나치게 많거나 해로운 변종이 생겨나는 경우, 또 면역력이 약화된 사람의 경우 식중독 등의 질병이 일어날 수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대장 속에서만 살아남는 대장균이 식품에 존재한다면 그 식품 자체가 분뇨 등에 오염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즉, 대장균이 욕먹는 것은 사실 대장균의 죄라기보다는 인간의 문제인 것이다.
이런 이유로 사실은 딱히 반대편이 아니지만, 이미지 상 반대편을 총칭하는 유익균이 있다. 예전에는 유산균만 이야기했지만 지금은 종류가 늘어나서 유익균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데, 약국에 가면 광고가 붙어있는 ‘프로바이오틱스’가 바로 유익균과 동의어이다. 이 미생물들은 유해균으로 분류되는 대장균 등에 비해 우리 세포와 더 부드럽게 공생한다. 세포를 보호하기도 하고 면역 물질 생산을 촉진하며 대사 기능도 정상화한다. 물론 이들도 ‘좋은 의도’ 같은 것을 갖고 있을 리는 없고 다만 우리 배 속이라는 생태계에서 그렇게 진화되어 살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건강을 위해서 많이, 지속적으로 섭취하는 것은 중요하다.
몸 속 미생물에 대한 우리의 생각은 대개 이 정도 단계에서 머문다. 하지만 여기서 조금 상상력을 동원해서 새롭게 느껴보면 어떨까. 자그마치 지름 10만 광년인 우리 은하에는 그 크기에 걸맞게 수천 억 개의 항성과 수조 개의 행성이 있다. 그야말로 엄청난 숫자지만 우리들 각각의 배 속에 든 40조 개에 가까운 미생물에 비하면 딱히 그렇지도 않다. 나아가 우리 몸을 이루고 있는 30조 개의 세포도 생명 탄생의 시초부터 보면, 세균이나 다를 바 없는 단세포 생물들이 보다 좋은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공생한 결과로 형성됐다. 즉 70조 개의 작은 생물들이 옥신각신하면서 가급적 안정된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거대한 사회가 바로 우리 몸 하나하나인 것이다.
이런 미생물들은 이제 몸 바깥 세계까지 진출해서 인류 과학기술의 일원이 되고 있다. 폐렴이나 수막염을 일으키는 상당히 위험한 병균인 ‘슈도모나스 에루지노사’는 인류로서는 그저 배척해야 할 대상일 뿐이었지만, 최근 프린스턴대학 분자생물학 연구팀이 이 세균을 실시간 속도 센서로 변환시켰다. 액체 속에서 흐름의 속도에 반응하는 이 균에 빛을 내게 하는 유전자를 결합해서 속도의 변화에 따라 빛의 밝기가 달라지게 한 것이다. 일반적인 속도계를 사용할 수 없는 세밀한 환경에서 액체의 속도를 감지할 수 있는 바이오 속도계가 만들어진 셈이다. 지금까지 인간과 미생물의 공생이 생존 본능과 몸 속 생태계 차원에서 이뤄졌다면 이제는 엔지니어링이라는 새로운 영역이 추가된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다른 생물, 사회, 자연, 우주, 이 모든 것들에 열려 있으면서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는 존재다. 나의 건강은 수십 조 생물들의 건강이며, 나의 확장은 또한 그 모든 영역의 확장이기도 하다. 스스로의 몸과 마음을 소중히 여겨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필자소개----------------------------------------------------------------------------------------
파토 (원종우)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했고 20대 중반에 인디레이블 운동을 주창, 록 뮤지션으로 데뷔하고 음악 평론가로도 활동했다. 이후 영국에서 기타로 학위를 받았다. 1999년 『딴지일보』에 합류하여 음악, 문화, 역사, 과학 등을 주제로 글을 썼다. 팟캐스트 방송 〈파토의 과학하고 앉아있네〉로 5년 동안 5천만 다운로드를 기록했으며, 벙커원에서 정기적으로 진행하는 공개 토크쇼 〈과학같은 소리하네〉로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또한 과학자, 작가, 예술가들과 함께 새로운 형태의 과학 전시, 강연, 공연을 기획·연출하면서 대중과 호흡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