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생산기술연구원

IT를 입은 옷

IT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면 결국은 사람으로 귀결된다. 그 주제가 무엇이고, 시작이 무엇이든 말이다. 사람들은 지금의 생활에서 크게 벗어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단지 조금 더 편리한 것에서 만족한다. 그래서 극단적인 패션보다는 일상에서 부담스럽지 않게 입을 수 있는 옷이 더 각광 받는다. 섬유과학의 발전은 이 지점에 있다. 보통의 사람들이 편안하게 입는 옷들에 기술을 더한다. 스마트 기술의 발전은 스마트 밴드, 스마트워치, 스마트 글래스 등과 같은 스마트 기기들을 낳았다. 하지만 몸에 착용하는 가장 대표적인 것은 바로 옷이다. 액세서리가 아닌 옷에 스마트 기능을 더한 것이 차세대 웨어러블의 대표주자로 여겨지고 있다. 하지만 단순히 스마트 기능을 옷에 삽입한다고 해서 차세대 웨어러블이 되는 것은 아니다. 첨단 섬유소재 기술과 IT 기술이 융합된 옷이어야 한다.옷은 우리 몸을 보호하는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에 입었을 때 피부에 부담이 돼서도 안된다. 우리를 안전하고 편리하게 해줄 스마트의류 산업은 어디까지 발전해 있을까.

최강의 발열 기술

스마트 의류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 이 겨울옷이다. 체온을 유지하고, 몸을 보호하기 위한 겨울옷에 필요한 기술은 발열이다. 발열 의류는 스스로 열을 발생시켜 체온을 유지시켜 준다. 또한 땀을 흡수하고, 배출하거나, 비를 막고, 바람을 차단하는 기능도 겸비한다.이러한 기능들은 극한의 상황에서도 신체를 정상적으로 유지할 수 있게 해준다. 스스로 열을 내는 발열 소재를 가리켜 히텍스(HeaTex)라고 한다. 원리는 간단한다. 히텍스 의류에는 스마트 섬유가 들어있다. 그리고 이 섬유는 안주머니에 들어있는 배터리와 연결된다. 배터리를 작동시키면 곧 섬유의 온도를 40도까지 높여준다. 전기로 섬유를 데워주는 방식이며, 발열 상태는 배터리 용량에 따라 다르지만 7시간 정도는 지속된다. 배터리 없는 발열 의류도 있다. 썬워머(Sunwarmer)는 발열 소재다. 인체의 땀을 에너지로 전환하는 고기능성 섬유이다. 수증기 상태의 물분자는 원단에 흡수되며 운동 에너지를 잃고, 그 대신 열에너지가 생성된다. 따라서 썬워머를 입고 땀을 많이 흘릴수록 옷이 따뜻해진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면상발열체라는 내장 열선 없이, 탄소 섬유로 프린팅한 발열 패드를 내장한 겨울 의류도 있다. 발열 패드는 70g에 불과해 매우 가볍고, 부드러운 원단으로 제작해 구겨지거나 접혀도 손상이 없어 안전성이 높다. 여기에 탄소섬유는 인체에 유익한 원적외선까지 발생해 건강에도 좋다. 이런 겨울 의류에는 리모콘이 동봉된다. 리모콘으로 겨울철 의류의 온도를 조절하는 것이다. 마치 TV나 스마트폰처럼 의류역시 작동시킬 수 있는 경지에 올랐다.

스마트 의류의 역습

의류와 스마트 기기의 차이는 점차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이미 의류들이 스마트 기능을 겸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의 한 남성정장 브랜드는 스마트 슈트 2.0을 선보였다. 이 수트는 겉에서 볼 때는 세련된 정장처럼 보이지만, 상의에는 NFC칩이 내장되어 있다. 이 작은 칩을 통해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빼면 자동으로 잠금이 해제되거나 문자메시지,이메일, 명함 전송 등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 진동이나 무음이 필요할 때 자동으로 전화 수신 차단이 되는 에티켓 기능도 제공한다. 스마트 의류의 또 다른 대표적인 예는 스포츠 영역에서 찾아볼 수 있다. 랄프로렌의 폴로테크 셔츠는 폴로 엠블럼에 특수 섬유로 제작한 생체 측정 밴드를 내장했다. 가속도계, 자이로스코프 등의 센서가 착용자의 심박수, 호흡수, 스트레스 수준, 이동거리, 칼로리 소모량, 운동 강도 등을 측정한다. 측정의 다양성과 정확도 면에서는 스마트 밴드 등의 액세서리 보다 한 수 높다. 이러한 섬유 과학의 중심에는 우리나라가 있다. 섬유 과학의 원천 기술들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적외선을 받으면 순식간에 섬유 온도를 10도 이상 상승시키는 히터렉스, 땀에 젖은 옷을 1초만에 건조시키는 드라이존, 햇볕을 받으면 스스로 발열하는 솔라볼, 천연염색 기법의 와인텍스, 옷을 입은 듯한 자연스러운 3D움직임을 보여주는 FX미러 등 한국의 섬유과학 기술은 기획에서부터 디자인, 소재, 생산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압도적인 실력을 보이고 있다. 최근 한국생산기술연구원은 산·학·연과 공동개발을 통해 IT 융복합 기술을 적용한 ‘스마트 방호복’을 개발해 화제를 모았다. 강산(pH3 이하의 산)이나 휘발성유기화합물(VOCs)을 미리 감지할 수 있어 다양한 산업현장의 유해요인을 예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처럼 우리나라는 독보적인 섬유 과학 기술력을 보유한 것은 물론, 지속적인 수출을 통해 세계 속에 그 우수성을 입증하고 있다. 고가의 섬유를 수입하던 나라가 이제는 전 세계 섬유 과학을 이끄는 강자가 된 것이다.

잊지 말아야 할 것

스마트 의류는 균형이 중요하다. 소비자들은 첨단 기기가 주렁주렁 달린 옷을 입고 싶어하지는 않는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기술과 패션이 융합된 세련된 옷이다. 그래서 스마트 글래스나 스마트 밴드 등은 패션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지 못해 기대만큼 각광받지 못했다. 의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디자인이다. 입고, 보았을 때 어색함이 없어야 한다. 스마트 의류는 다른 웨어러블 기기보다 몸에 직접적이기에 자연스러운 착용이 가능해야 하고, 불필요하다는 인상을 주지 않아야 한다. 첨단 기술력을 강조하기 보다는 실생활에서 어색하지 않은 옷이 되어야 한다. 앞으로 섬유 과학 기술은 더 빠른 속도로 발전할 것이다. 그 발전 과정 중 패션과 기술의 균형을 잘 유지하는 것이 국내 섬유 과학을 이끌 중심 과제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