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생산기술연구원

미국 애플사는 ‘감성적 기업’으로 유명하다. 애플의 감성은 뛰어난 UI기술과 사용자의 오감을 만족시키는 디자인에서 나온다. 한 자동차회사는 음향회사와 손잡고 운전자의 청각까지 만족시키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차량 내 잡음을 제거하는 액티브 노이즈 컨트롤 기술을 도입하고, 엔진과 배기관에 멋진 사운드 시스템을 연결하기도 한다. 이는 기존 차체 경량화나 고성능 엔진 개발과는 다른 방식으로 운전자를 만족시켜 구매력을 높인 사례로 주목받았다. 이렇듯 개인 경험의 영역으로 여겨진 감성이 기술과 가격경쟁력을 넘어 새로운 시장공략 키워드로 떠올랐다. 이제는 보고 듣고 만졌을 때 전해지는 감각이 제품 구매율을 촉발하는 ‘감성품질’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가전제품이나 자동차, 휴대폰 등이 추구하는 감성은 소재와 부품을 통해 구현된다. 희소금속연구실용화그룹 이효수 수석연구원팀은 소재와 부품의 혁신없이 제품의 감성화는 불가능하다고 판단, 인간 오감 중 가장 예민한 시각의 기능을 더욱 발현시킬 수 있는 컬러합금을 개발 타깃으로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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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소재 색상은 회색에 가까운 금속에 도금이나 도장 등의 표면처리를 통해 구현되어 왔다. 인간은 반사각을 통해 금속의 색상을 파악하는데, 바탕색이 다르면 동일한 표면처리를 하더라도 각기 다른 색으로 인식한다. 또, 기존 표면처리 방식은 도금이 벗겨지면 모재 색상이 그대로 노출되어 완성품의 가치가 떨어진다. 컬러합금은 금속 자체가 다양한 색상을 띠게 하는 기술로 이러한 단점을 완벽하게 보완 가능한 기술이다. 컬러합금 소재의 핵심기술은 두 종류의 금속을 혼합하여 원하는 색상을 표현하고, 여기에 터널링(Tunneling)을 통해 하나의 금속을 더하여 강도를 유지하는 것. 그리고 부식을 방지하기 위해 수분이 들어가지 않도록 폴리머 탑코팅을 하면 코팅이 벗겨지더라도 동일한 색상이 그대로 노출된다. 또한, 컬러합금의 변색 가능 범위를 구체화하여 천연가죽을 오래 사용했을 때 자연스럽게 색이 변하듯 금속에도 자연스러운 사용감을 부여할 수 있다. 컬러합금 재료에는 구리, 티타늄, 마그네슘, 아연, 실리콘 등 다양한 금속/비금속이 사용된다. 같은 금속을 혼합하더라도 첨가 금속의 비율에 따라 색상뿐만 아니라 강도 등의 성질이 변하기 때문에 가공성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이에 이효수 수석연구원은 다음과 같은 해결책을 제시했다.

“알루미늄호일처럼 얇은 두께로 제작이 가능한 컬러합금이 있는 반면, 가공성이 좋지 않은 합금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 컬러합금을 파우더 형태로 만들어 분사합니다. 점묘화처럼 금속 고유의 질감과 색을 살리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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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량화된 감성공학의 언어로 소통하다

연구팀에서 컬러합금을 개발하게 된 배경에는 실질적 시장의 요구가 있었다. <2014년 감성소재·부품산업 육성방안 설문조사> 결과, 소재부품 중소·중견기업에 감성기초 연구 및 정보제공, 감성디자인, 감성소재 개발 등 감성에 대한 종합적이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컸다. 자체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는 대기업의 경우에도 감성언어와 공학언어가 달라 의견교환이 안될 때가 많아, 공통 요소기술이 대기업에서도 무척 필요하다라는 의견이 나왔다. 하지만 이런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팀 내부에서 두 가지 문제에 부딪쳤다. 이효수 수석연구원이 마주한 고충들을 털어놓았다.
“공학자들은 어떤 금속들을 혼합하면 어떤 색상이 나오는지 경험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컬러합금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시하면 기존의 도금처리로 가능하다는 의견을 내놓거나, 가격 경쟁력을 묻습니다. 경제성과 효율성 중심의 이성적 사용가치에서 제품과 서비스가 주는 의미를 중심으로 한 감성가치 추구로 인식이 바뀌려면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두 번째 문제는 ‘색에 대한 공학적 정의’. 감성소재부품기술 개발에는 공학과 인문학, 예술, 심리학 등 학제 간 융합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그러나 ‘감성’에 대한 각 분야 전문가들이 사용하는 언어가 달라 제품 개발에 어려움이 있다. 주관적으로 사용해온 ‘부드러움’이라는 감성언어를 공학언어로 연결하려면 촉각을 러프니스(Ra, 중심선 평균 거칠기)라는 공학지표로 계량화를 거쳐야 한다. ‘붉은색’이라는 단어에도 사람들은 머릿속에 제각각 다른 색을 떠올릴 수 있다.
이효수 수석연구원팀에서는 컬러합금이 표현하는 색상의 정의를 내리는 과제를 안고 있다. 채도와 명도를 나누고 표면처리까지 마친 컬러합금의 색상을 육안으로 식별하지 못한다면 문제가 발생한다. 여기에 객관성을 도입하기 위해 금속의 반사도 측정을 통해 팬톤북(Pantone Book)의 색상과 비교한다. 미국의 펜톤사에서 제작한 팬톤컬러는 시각예술 분야뿐만 아니라 디지털 기술, 건축, 패션, 도료 등 산업 전반에서 표준색채 언어로 사용되고 있다. 이효수 수석연구원팀의 목표는 팬톤컬러처럼 컬러합금을 색상별로 코드화해서 표준화하는 것이다.
“세계 최대 규모의 전자제품 전시회인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CES(Consumer Electronics Show)나 독일 베를린의 IFA(Internationale Funkausstellung)에서 기술력이 공개되고 6개월이면 중국에서 뒤쫓아 옵니다. 최근에는 앞선 기술 개발이 아닌, 높은 연봉으로 연구원을 고용하고 있기 때문에 가격 경쟁력에서도 밀리고, 창의적 기술로도 해결되지 않습니다. 바로 ‘감성’ 키워드로 시장을 공략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이효수 수석연구원은 2015년 컬러합금 실용화 방안으로 호텔 등 고급스러운 인테리어에 사용할 수 있는 메탈 벽면 마감재를 생각하고 있다. 금속판을 겹쳐 압연하여 기계적으로 접착시키는 클래드 기법을 이용해 저렴한 모재 위에 판상으로 제작한 컬러합금을 접합하는 것이다. 이를 이용하면 소재비가 1.2배가량 상승할 수 있지만, 도금한 금속으로는 구현할 수 없는 라이브 메탈의 고급스러운 느낌을 통해 이용자들의 만족도를 높여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올해 본격적인 소재부품 감성화지원사업이 시작되고, 시흥에 감성소재부품센터가 건립되면서 해당 연구 및 실용화가 본격적으로 추진될 예정이다. 컬러합금은 이 사업의 시각 분야에 포함되어 있으며 촉각, 청각, 후각, 미각을 아우르는 융합기술이 각 감각에 따라 개발되고 DB로 구축되어 중소기업의 제품개발에 힘을 보탤 예정이다. 소재부품 감성화 기술기반구축을 통해 사용자의 오감을 만족시키는 학제 간 융합연구의 성과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