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생산기술연구원

올해 초 영신창업투자회사가 생기원과 손잡고 연구소기업을 설립했다. 바로 특별한 OLED 소재 기술을 기반으로 한 ㈜일솔레 드다. 투자사가 투자를 택하지 않고 직접 기업을 세운 점이 상당히 이례적인데, 이는 그만큼 OLED 소재 기술의 가능성을 높게 평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업계뿐만 아니라 정부도 이 기술의 파급력에 주목하고 있다. ㈜일솔레드가 연구소기업 200호에 선정된 것 역시 이러한 이유에서다.

우수 기술에 날개를 달아주는 연구소기업

아무리 뛰어난 기술이라도 연구에만 머문다면 그 기술은 우물 안 개구리일 수밖에 없다. 연구 성과를 활용하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이에 정부는 우수 기술이 산업 현장 곳곳에 스며들 수 있도록 각종 지원책을 펼치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연구소기업이다. 연구소기업이란 공공 연구기관이 보유한 기술을 사업화하기 위해 설립 자본금 중 20% 이상을 연구기관이 직접 출자하여 연구개발특구 안에 설립하는 기업을 말한다. 연구소기업은 연구기관의 기술과 기업의 자금 및 경영 노하우, 법인세 감면 등 정부의 혜택이 결합해 연구 기반을 갖춘 전문 기업 형태를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이 같은 장점 덕에 최근 연구소기업은 창조경제의 새로운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실제로 8년간 89곳의 연구소기업이 문을 연 반면, 연구소기업 200호가 탄생하기까지는 고작 2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최근 연구소기업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크게 늘었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200번째 순서를 맞아 정부가 선정한 기업은 일솔레드. OLED 디스플레이 소재·장비 개발을 주 사업으로 하는 일솔레드는 ‘이온성 액체(ILs) 기반 하이브리드 정제법(이하 ILs 정제법)’으로 기술 혁신을 이뤄낸 연구소기업이다.

오랜 기다림 끝에 결실 본 일솔레드
“상징적 숫자에 걸맞은 기업을 고르느라 고심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일솔레드가 OLED 산업에 미칠 파급 효과를 높게 보고 연구소기업 200호로 선정하지 않았나 싶어요.” 광에너지융합그룹 김태원 수석연구원은 지금에서야 웃으며 이야기를 꺼내지만, 사실 일솔레드가 설립되기까지는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고 전했다. 김태원 수석연구원이 ‘ILs 정제법’ 관련 특허를 출원한 건 지난 20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즈음 특허 담당 변호사가 ‘ILs 정제법’을 영신창업투자회사에 소개해 투자 검토를 의뢰했는데, 당시 영신 창업투자회사에서 이 기술을 평가했던 사람이 바로 일솔레드 채진석 대표였다. “김태원 수석연구원님의 기술을 처음 접했을 때 독특한 정제 기술에 매우 놀랐습니다. 하지만 산업적 응용이 가능한 기술인지는 확신할 수 없었죠.” 채진석 대표의 말처럼 첫 특허 출원을 마친 김태원 수석연구원의 개발 기술은 당장 사업화를 하기에는 이른 감이 있었다. 하지만 영신창업투자회사는 이 기술이 OLED 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진작 알아봤고 사업화를 결정했다. 그 사이 김태원 수석연구원은 관련 특허만 19개를 추가로 출원할 만큼 기술 사업화를 위해 연구에 더 매진했다. 그리고 2015년 말, 드디어 결실이 보이기 시작했고 이듬해 3월 채진석 대표와 김태원 수석연구원은 일솔레드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출발점에 함께 서게 되었다.

연구소기업이란?

정부출연연구기관·전문생산기술연구소·대학 등 공공 연구기관이 개발한 기술을 사업화하기 위해 설립 자본금 중 20% 이상을 직접 출자해 연구개발 특구 안에 설립하는 기업

연구소기업 최근 5년간 연평균 증가율

잠재력 있는 기술, 유망한 OLED TV 시장
내실을 다지며 더 견고해진 일솔레드. 김태원 수석 연구원은 숙성 기간이 길었던 만큼 일솔레드의 기술은 잠재력이 크다고 말한다. “OLED 디스플레이는 유기발광 소재로 만들어집니다. 소재의 순도가 높을수록 OLED 디스플레이의 발광 효율이 높고 수명이 길죠. 이 소재의 순도를 높이는 게 정제인데요. 일솔레드의 정제법은 기존 정제법의 단점을 보완한 기술입니다.” 현재 두루 쓰이는 ‘승화 정제법’은 고순도 소재를 얻는 과정에서 수작업을 필요로 했다. 수율(소재 투입 대비 고순도 소재 획득 비율)은 40~70%에 불과하고, 소재를 기체화했다가 고체화하는 과정을 두 세 번 반복해야 순도가 높아질 정도로 비효율적이다. 이런 ‘승화 정제법’의 한계를 극복한 기술이 바로 일솔레드의 ‘ILs 정제법’이다. 이온성 액체를 승화 정제 과정에 투입해 수율과 순도를 높인 것이 이기술의 핵심. 승화된 유기발광 소재가 진공에서 이온성 액체에 녹아 과포화 상태를 거쳐 고순도로 재결정화되는 원리인데, 한 번의 정제만으로 99.95% 고순도 소재를 90% 수율로 얻을 수 있는 강점을 가졌다. 수작업도 필요 없다. 한마디로 자동화 공정을 통해 고순도 소재를 대량 생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채진석 대표는 ‘ILs 정제법’이 다가올 OLED 시장 확대에 완벽히 대응할 수 있으리라 내다보고 있다. “이제 막 발걸음을 뗀 OLED TV 시장이 성장하면 OLED 소재 시장 또한 50~100배가량 커질 것으로 예상합니다. 이때는 현재 승화 정제법으론 디스플레이 패널 업체의 수요를 맞출 수 없어요. 결국 ILs 정제법을 도입해야 하는 시기가 올 겁니다.”

연구소기업 등에 업고 세계를 바라보는 기업
산업 전망은 밝지만 일솔레드가 가야 할 길은 아직 멀다. 하루빨리 ‘ILs 정제 장비’를 상용화해야 하고 소재 업체가 이 장비를 도입하도록 끊임없이 기술 효과를 보여줘야 한다. OLED 디스플레이 제작 과정에서 유기발광 소재가 디스플레이 패널 외에 다른 곳에 붙지 않도록 하는 ‘방착 기술’도 후속 연구로 진행해야 한다. 물론 이 모든 걸 일솔레드의 노력만으로 이뤄낼 순 없다. 때문에 채진석 대표는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우수한 기술임에도 불구하고, 기존에 없던 기술이다 보니 사업화하는 데 어려움이 많습니다. 육성 과정에서 더 촘촘한 지원, 범부처적 지원이 더해진다면 저희 같은 연구소기업이 국내를 넘어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OLED TV 시장의 성장과 함께 세계적인 OLED 소재 기업으로 우뚝 서고자 하는 일솔레드. 갓 시제품을 내놓은 터라 갈 길은 멀고 손에 잡히는 수익은 없지만, 연구소기업이라는 울타리 덕에 이들에게 미래는 두려움이 아닌 설렘으로 다가온다. ‘ILs 정제법’이 머지않은 미래에 OLED 소재 정제의 표준이 될 수 있을 만큼 우수하다는 것 역시 잘 알기에 오늘도 일솔레드는 강한 확신을 품고 성장가도를 향해 달려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