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생산기술연구원

지난 6월, 남양주 지하철 공사현장 폭발사고로 많은 사상자를 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폭발사고의 원인은 LP가 스 누출로 드러났는데, 사실 가스 누출로 인한 사건사고는 해마다 끊이지 않고 있다. 안전불감증도 문제지만, 공기 중에 퍼진 가스는 육안으로 확인이 어렵고, 수시로 가스 측정을 하는 것도 쉽지 않아 작업현장 등에서 가스 누출을 인지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별도의 측정기를 이용하지 않고, 눈으로 쉽게 가스를 감지할 수 있다면 어떨까? 해답은 IT융합소재그룹 이준영 수석연구원이 개발한 ‘신뢰성 인디케이터 표시물질’에서 찾을 수 있다.

눈으로 가스를 감지하는 기술

우리가 숨을 쉬며 살 수 있는 건,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공기 속 산소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공기 중에 산소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산소와 함께 산소 네 배 가량의 질소와 소량의 아르곤, 헬륨, 이산화탄소 등이 섞여 있다. 이중 특정 가스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지거나, 상대적으로 산소가 부족하게 되면 우리는 호흡에 문제를 느끼는데, 이를 미연에 알아차리거나 스스로 인지하기란 쉽지 않다. 때문에 공사현장 등에서 가스 누출로 인한 질식사와 같은 사고가 벌어지게 되는 것. 물론 가스를 측정하는 측정기기가 있지만, 워낙 고가인데다 시시때때로 가스를 측정해가며 작업을 하기가 번거롭다는 문제가 있다. 만약 이산화탄소(CO2)와 같은 공기 중 가스를 감지할 수 있는 물질이 있다면 어떨까? IT융합소재그룹 이준영 수석연구원팀의 연구는 이 물음에서 시작됐다. 물론 그간의 화학적 연구를 통해 가스를 감지할 수는 있게 됐지만, 이를 사람이 즉각적으로 인지하는 것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측정기의 수치를 일일 이 확인하는 방법 말고, 좀 더 시각적으로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했다. 그래서 고안해 낸 방법이 바로 ‘색깔’을 이용한 것이다. 즉 이산화탄소가 많아지면 색깔이 변하는 인디케이터(Indicator)를 개발, 좀 더 쉽고 간편하게 그리고 빠르게 가스를 감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준영 수석연구원팀이 이 기술로 제일 먼저 접근한 건 바로 식품 분야였다. 식품에서 이산화탄소가 발생한다는 건 식품의 부패가 시작됐다는 것인데, 이때 인쇄 및 스티커 형식의 인디케이터를 부착, 색의 변화에 따라 얼마나 상했는지 정도를 알 수 있게 한 것. 또한 김치와 같이 발효 과정에서 이산화탄소가 발생하는 경우, 그 양에 따라 김치가 얼마나 익었는지 여부를 색을 보고 알 수 있어 원하는 맛의 김치를 골라 먹을 수 있다. 즉, 소비자가 원하는 맛의 식품을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넓어지게 된 것이다.

이온페어시스템과 블랜딩

이번 ‘신뢰성 인디케이터 표시물질’ 기술은 농림축산식품부 3년 과제로 2014년 12월에 시작해 현재 2차년도 연구를 진행 중에 있다. 궁극적으로는 식품뿐 아니라 다양한 산업현장에까지 적용하는 것이 목표인데, 사실 공기 중의 가스를 색깔로써 인지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 매우 어려운 기술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손쉽게 이산화탄소를 인지하는 방법으로 리트머스지를 떠올릴 수 있다. 이산화탄소가 물에 잘 녹는 성질을 이용, 물에 녹은 이산화탄소가 탄산, 즉 산성이 되면 PH가 낮아지고 이를 리트머스지의 색변화를 통해 알아내는 것이다. 산성이라는 건 수소 이온, 즉 H+이온이 많이 녹아있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H+이온이 많을수록 PH를 변화시키게 되고, 이를 리트머스지로 측정하는 것이다. 문제는 ‘물’이라는 용매가 있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접촉을 통해서만 알 수 있다는 점이었다. 즉 액상에서만 측정이 가능하다는 한계가 있었다. 이준영 수석연구원은 이를 기상, 즉 수분의 존재 유무와 관계없이 공기 중에서 측정할 수 있도록 하고자 했다.

액상에서만 가능했던 것을 기상으로 옮기는 데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기능성 나노 구조체로 소재를 구현했기 때문. 먼저 반응에 의해 색이 변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했다. 이를 ‘이온페어시스템’이라고 하는데, 그중 BTB-와 TBA+, CR-와 TOA+를 각각 결합시켜 이온페어를 통해 습도(수분)가 필요 없이 PH 변화를 통해 색이 변하는 키소재를 만들었다. BTB-와 TBA+는 PH6.5~7.2에서, CR-와 TOA+는 PH 8.0~8.2에서 색이 변하는데 변색 범위가 서로 다른 만큼 각각의 범주 안에 맞는 제품을 적용하면 된다.

현재는 이 두 가지가 큰 축을 이루지만 더 많은 화학소재의 ‘이온페어시스템’ 설계를 통해 보다 적용 범위를 넓힐 수 있다. 앞서 ‘이온페어시스템’을 통해 어떠한 환경에서 색깔이 변하는 물질을 만들어냈다면, 그 환경 변화를 일으키는 시스템도 필요하다. 즉 이산화탄소 농도가 증가할 때 반응하여 환경 변화를 일으켜야 하는데 그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PEI(폴리에틸렌이민)다. 이때 두 물질의 이온페어한 것과 PEI의 블랜딩이 적절히 어우러졌을 때, 이산화탄소에 의한 색깔 변화가 가능한 것. 만약 이산화탄소가 아닌 다른 가스를 감지하고자 하면, PEI를 다른 물질로 대체하면 된다. 또한 ‘이온페어시스템’과 블랜딩 과정을 통해 잉크를 만드는 데도 성공했는데, 이 잉크를 필름에 인쇄해 포장용지나 스티커 등으로 만들면 보다 간편하게 사용할 수 있다.

모두의 안전을 위한 기술

‘신뢰성 인디케이터 표시물질’은 현재 2개의 특허를 낸 상태다. 기술적 한계를 극복하고 기존에 없던 새로운 기술 개발에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고 있다. 하 지만 아직 초기 연구단계인 만큼 극복해야 할 과제도 있다. 바로 ‘가역성’에 관한 것. 현재 개발된 기술은 이산화탄소가 감지되면 색이 변했다가 다시 이산화탄소가 없어지면 원래 색으로 돌아오는 ‘가역성’을 갖고 있다. 문제는 식품에 적용했을 때 발생한다. 공기 중 가스는 있다가 없어지기를 반복할 수 있지만, 한 번 상한 음식은 이산화탄소가 빠져나갔다고 해서 다시 신선도가 돌아오지 않는다. 즉 인디케이터 색이 변했다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면 음식의 상함 정도를 판단하는 것이 어려워지므로 ‘비가역적’인 인디케이터를 개발할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또한 현재 육류 및 발효식품을 넘어 다양한 산업군에 활용될 수 있도록 추가 연구도 진행 중에 있다. 변색 범위의 폭을 더 넓혀나가는 중인데, 앞선 ‘이온페어시스템’에 다양한 소재들을 적용시켜 테스트하며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이제 고가의 측정 장비 없이, 또 일일이 수치로 확인할 필요 없이 색깔 변화로 가스를 감지하고, 식품의 신선도를 측정하며, 원하는 맛을 골라 먹을 수 있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먹거리부터 산업 전반에 걸쳐 모두의 ‘안전’을 생각한 이준영 수석연구원의 바람처럼, 이 기술이 좀 더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드는데 보탬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