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생산기술연구원

미정화학㈜의 역사는 4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6년 7월, 국내 최초로 재생섬유 사업을 시작한 미정화학. 쓰고 남은 페트병을 녹여 섬유를 만드는 재활 용 사업으로 시작해 40년 동안 한 길만을 걸어온 미정화학은 현재 관련 업계에서 국내 상위 3위 안에 들 정도로 꾸준히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다. 쓰고 버린 페트병을 재활용해 불순물을 제거하고 섬유로 제작, 베개나 침낭 속에 들어가는 충전재를 만들고 있다. 중공섬유란 섬유 단면 한가운데 구멍(Hole)이 있는 화학섬유를 뜻한다. 가볍고 보온력이 뛰어나며 탄성이 좋은 특성을 가지고 있다. 당시 순수 폴리에스터 수지만으로 중공섬유를 생산하는 곳은 있었지만, 미정화학처럼 재생 수지를 이용해 섬유를 제조하는 업체는 거의 없없다. 재생 수지는 불순물이 많고 원료 의 물성이 안정적이지 않아 섬유로 재가공 하는 것이 힘들기 때문이다. 그런 가운데 미정화학은 재생 수지를 이용한 중공섬유 자체 개발에 성공하며, 국내 최초라는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미정화학에서 만든 중공섬유는 미국과 영국 등으로 전량 수출되고 있다. 중소기업으로서 독자적으로 해외 시장을 개척한 것도 대단하지만, 끊임없이 기술 개발을 위해 노력해왔다는 미정화학 고상진 부사장. “몇 년 전, 차별화된 섬유 개발, 또 품질 개선을 위해 과감하게 설비 투자를 감행하기도 했지만 자체 기술이나 노하우로는 한계가 있더군요. 한양대에 자문을 구하러 갔더니, 바로 옆에 위치한 생기원을 소개시켜 주셨어요. 그렇게 함완규 수석연구원님과 인연을 맺게 되었죠. 아마 2009년도쯤이었을 겁니다.”

보온·탄성은 높이고 무게는 낮춘 ‘4중 중공섬유’ 개발

중공섬유, 즉 섬유에 구멍을 만드는 이유는 보온성, 단열성, 볼륨감, 탄성을 높이고 무게를 낮추기 위함 이다. 우리가 매일 베고 자는 베개를 생각하면 쉽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적당한 볼륨감이 있으면서 가볍고, 탄성이 좋은 베개를 선호하는데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이 바로 베개 속에 들어가는 중공섬유인 것. 특히 베개를 눌렀을 때 힘이 어느 정도 드는지, 또 다시 제모양을 찾는 회복력이 얼마나 좋은지가 관건이라는 미정화학 최문호 전무. “좀 더 좋은 품질의 제품을 만들기 위해선 3중 또는 4중 중공섬유 개발이 필요했습니다. 쉽게 말해 구멍이 1개에서 3개, 4개로 늘어나는 것이에요. 구멍의 수가 늘어나면 누를 때 힘이 덜 드는 것은 물론 훨씬 폭신하게 느껴질 뿐만아니라 잠을 자면서 베개에 흘린 땀을 배출해주는 소수성(Hydrophobic)을 갖게됩니다. 이미 해외에서는 순수 수지를 이용한 기술이 개발된 상태였고 국내 시장을 살펴보니 수입에 의존하고 있었습니다. 국내 기술 개발이 시급했죠.” 당시 함완규 수석연구원은 순수 수지로 만든 섬유만을 다루던 중, 미정화학의 이야기를 듣고 품질 좋은 순수 폴리에스터 수지로만 만들 수 있었던 것을 재생 수지로 만들어 보자고 결심했다. 또한 당시 생기원에는 국내 유일하게 섬유를 테스트해 볼 수 있는 파일럿 장비가 구축되어 있었고, 이를 이용해 개발 방향을 정할 수 있었다.

함완규 수석연구원은 “기본적으로 페트병, 즉 재생수지를 이용해 섬유를 만드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라며 “이물질을 최대한 제거해 적합한 수지 조건을 맞추는 게 가장 중요한데 이를 위해서는 필터링 기술을 개선하는 게 우선이었다”고 전했다. 이물질을 완벽하게 제거하지 않으면 섬유가 중간에 끊어지기도 하고 노즐이 막혀 문제가 생길 수도 있기 때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바로 수지의 점도를 맞추는 일이다. 점도가 묽으면 중공이 안 나오고, 또 점도가 진하면 섬유가 뻣뻣해질 수 있기에 수지의 분자량·점도 제어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또한 노즐 설계도 중요하다. 일정한 중공, 즉 동일 크기의 구멍을 만들기 위해서는 노즐 설계를 철저히 해야 하기 때문이다. 설계를 잘못하면 구멍이 벌어지거나 아예 안 생기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 이 모든 과정을 거쳐야만 비로소 ‘4중 중공섬유’를 만들 수 있다는 함완규 수석연구원.

“노즐 하나를 만드는 데 몇 백만 원이 드는데, 한 라인에 20개의 노즐이 필요해요. 설계를 잘못해 문제가 발생하면 몇 천만 원을 날리게 되는 셈이죠. 때문에 철저한 테스트를 거쳐야만 합니다. 정확한 노즐 스펙을 잡는 데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파일럿 장비 덕에 시뮬레이션을 해보며 최적의 설계를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점점 더 얇게, 품목은 더 넓게

미정화학의 ‘4중 중공섬유’ 기술 개발이 더욱 의미 있는 것은, 순수 폴리에스터 수지로 만든 것보다 가격은 낮으면서 동일한 수준의 품질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해외 바이어들이 끊임없이 미정화학을 찾는 이유이기도 하다. 최석보 대표이사는 “처음 ‘4중 중공섬유’ 기술 개발도 해외 바이어들의 요청 때문에 시작하게 됐다”며 “세계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선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었다”고 전했다.

현재 생기원과 미정화학은 2건의 정부과제를 통해 ‘4중 중공’ 기술 개발을 완료하고 또 다른 과제를 진행하며 실의 두께를 줄이는 데 집중하고 있다. 2015년 하반기 두께 15데니아(Denier, 이하D)를 개발한 데 이어 6D는 최근 마지막 테스트를 거친 상태다. 섬유의 두께가 얇아질수록 촉감이 좋고 활용 범위도 늘어나게 된다.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이후 4D까지 두께를 줄이겠다는 미정화학 최문호 전무.

“두께 4D는 현미경이 아니면 구멍이 안 보일 정도로 매우 얇습니다. 촉감이 확실히 다르죠. 6D는 침구류나 침낭으로, 4D 이하는 덕다운(Duckdown)을 대체하는 등 의류용으로 사용할 수 있어요. 즉 적용 분야와 수출 품목이 다양해질 것으로 기대합니다.” 한편, 미정화학의 재생 수지를 이용한 ‘4중 중공섬유’는 미국·영국·중국 및 국내 등 국내외 다수의 업체에서 제품을 평가 중에 있다. 까다로운 해외 바이어의 입맛에 딱 맞는 제품을 만들어내는 일이 쉽지는 않지만, 그간 노력했던 결실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는 미정화학 최석보 대표이사.

“생기원과의 협력 관계는 해외 바이어들로 하여금 신뢰를 높일 수 있게 했습니다. 실제 바이어가 생기원을 찾아 기술 지원 현황이나 장비를 살펴보기도 했어요. 앞으로도 생기원과 견고한 파트너십을 유지하며 기술 개발에 더 힘쓰고 싶습니다.” 이에 함완규 수석연구원도 “재생 섬유는 국내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드문 기술”이라며, “다른 재생 업체나 화학섬유쪽 시장이 고전을 면치 못하는 가운데 미정화학은 가동률 100% 자랑한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에 과감한 설비 투자까지, 앞으로 미정화학이 걷게 될 내일이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