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생산기술연구원

1950년 호남 양조장을 시작으로, 66년 동안 제주도를 대표하는 주류 회사로 자리매김한 ㈜한라산. 1976년 정부시책에 의해 제주도 내 군소 6개 소주업체를 통합한 ‘한일’, 또 1999년 ‘한라산’이란 이름으로 상호 변경 후 오늘날까지 제주도를 대표하는 향토 중소업체 중 하나로 성장해왔다. 국내 주류업계에서 유일하게 4대째 가업을 이으며 ‘좋은 술 만들기 외곬 경영’을 해온 한라산. 그러나 3년 전 80%에 육박하던 지역 내 점유율이 점점 하락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일명 ‘전국구’ 소주들이 제주도로 들어온 데다가, 건강 위주의 소비자 기호변화와 여성 소비자의 증가로 인해 저도수 소주가 트렌드로 자리 잡으면서 다소 높은 도수의 한라산 소주가 고전을 면치 못하게 된 것이다. 물론 그 이전부터 한라산은 저도수 소주에 대한 연구를 거듭해왔다. 기존의 ‘한라산 소주’는 독한 술에 대한 사람들의 수요로 인해 높은 도수를 고수한 반면, ‘올래소주’는 18.7에서 현재 17.5로 도수를 낮추며 리뉴얼을 통해 변화를 꾀했다. 그럼에도 한라산의 고민은 깊었다. “점점 변화하는 소비자들의 기호를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술의 품질 그리고 브랜드 강화 등 개선해야 할 사항이 많습니다. 특히 타 경쟁제품들과 차별화되는 제주 대표 소주로 부각시킬 수 있는 기술이 요구되었습니다. 주류산업에서는 술을 만드는 기술이 곧 제품 경쟁력이거든요.” ‘술의 맛은 물이 좌지우지한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소주에서 물은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한라산에서 만들어지는 주류제품들은 지하 90m의 천연암반수를 뽑아 올려 사용한다. 뽑아 올려진 물은 소주를 생산하는 원수로 사용되기 위해서 이물질 제거 및 음용수 레벨로의 엄격한 여과공정을 거친다. 한라산의 고민은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기존 공정에서는 화산암반수의 미네랄 성분이 적절하게 원수에 함유되도록 제어를 할 수 없기에, 제주 지하수를 100% 활용하고 있다는 브랜드가치를 강조할 수 없었기 때문. 제주 지하수에는 다른 지역에 비해 칼슘, 마그네슘, 나트륨, 칼륨 등의 천연 미네랄 성분 이외에도 각종 성인병 예방에 효과가 있는 바나듐 성분이 많이 함유되어 있다. 지하수를 보다 효율적으로 여과할 수 있는 공정기술 개발이 필요했고, 중소기업으로는 연구개발 능력의 한계가 있어 생기원의 문을 두드리게 되었다는 한라산 박용립 연구소장. “마침 생기원 제주지역본부에서는 ‘제주 중소기업 실용화 기술지원 사업’을 추진 중이었고 김재범 선임연구원님도 지역주력산업으로 물 응용 핵심기술 개발 관련 과제를 준비 중이었습니다. 생기원이 보유하고 있는 수처리 핵심기술과 생산공정개발 기술 역량을 바탕으로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잡혀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생기원에서는 지하수의 미네랄 성분이 충분히 함유되면서 이물질 및 유해물질을 완벽히 제거하는 공정개발을 위하여 Nano Filtration 기반의 Pilot 실험연구를 수차례 수행하여 최적의 원수를 생성하는 순환 여과 기술을 도출했다. 제주지역본부 박춘근 본부장은 “이제 출발선에 섰다”며 제주 산업고도화에 대한 의지를 피력했다. “제주는 1차, 3차 산업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그에 비해 제조업 생태계는 미약한 편입니다. 하지만 제주는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풍부한 자원을 갖고 있어요. 깨끗한 물, 천연생태자원, 바람 등을 원료로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반영되어 기술사업화가 이루어지면 미래의 혁신적인 제조산업과 강소기업들이 육성될 수 있습니다. 이번 기술 개발은 청정 제주 이미지를 고스란히 제품에 담아낸 것으로 미래 지역산업발전에 다다르기 위한 작은 첫걸음입니다.”

맑은 물에 조릿대를 더하다

한라산의 외고집 노력으로 이전부터 한라산 소주는 맛이 좋은 것으로 국내외에서 평가받고 있었다. 하지만 여기에 안주하지 않고 생기원을 통해 제주 청정 지하수를 충분히 활용한 원수 생성 공정기술 가능성을 확인, 프리미엄 주류 개발에 대한 상품 전략을 보다 구체화시켜 나갔다는 박용립 연구소장. “술은 다양한 여과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는데 이때 술의 향취와 목넘김에 있어 부드러움이 좌지우지됩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제주 특화 생태자원인 조릿대를 이용해보자는 것이었죠.” 조릿대는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인 한라산에서만 자생하는 제주특산식물로 동의보감에 기록될 정도로 다양한 효능을 가지고 있다. 이 조릿대를 이용해 숯을 만들어 여과하는 방식을 연구한 결과, 술의 향취가 훨씬 좋아진 것은 물론, 목넘김이 좋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문제는 조릿대 여과공법기술을 개발하는 것이었다. 생기원 제주지역본부는 조릿대 숯을 이용, 숯을 어떻게 얼마나 넣어야 하는지 분석하고 적절하게 여과가 되는지 등을 파악해 조릿대 여과공법을 개발할 수 있었다. 한 시간이 넘는 거리를 오가며 현장을 찾는 일이 쉽지는 않았지만, 한라산의 기술 개발에 대한 열정이 있었기에 힘을 낼 수 있었다는 김재범 선임연구원. “현재 조릿대 여과공법은 국내 특허출원은 물론 중국과 일본에 특허출원을 낸 상태입니다. 무엇보다 기술 개발을 통해 한라산 전체 소주의 매출이 약 5% 증가하는 성과를 보였습니다. 저희의 작은 도움이 기업의 매출증대에 기여했다는 점이야말로 가장 큰 기쁨이라 생각합니다.” 생기원과의 기술 개발 협력에 힘입어 현재 8개국에 한라산 소주제품이 수출되고 있다.

제주를 넘어 세계로

제주지역본부와 한라산은 산업통상자원부 지역주력 육성사업 연구개발과제의 일환으로 2015년 5월부터 2018년 4월까지 공동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한라산이 주관기관, 생기원 제주지역본부와 제주대학교가 참여기관으로 함께 진행 중인 이 국가연구개발과제 역시 제주의 청정 지하수와 생태자원을 이용한 기술 개발이다. 이번에는 조릿대 자체를 소주에 첨가물로 넣는 방안을 연구 중인데 조릿대 성분 연구 결과 숙취개선효과가 뛰어난 것으로 드러났다. 향후 제주의 천연생태자원의 기능성 물질을 추출하여 소주 첨가물로 넣게 되면 제주 프리미엄 소주가 탄생될 것이라는 박용립 연구소장. “해외시장을 타깃으로 새로운 첨가물을 찾던 중 2015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은 중국 투유유 교수의 개똥쑥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개똥쑥 역시 제주 특산품 중 하나로 현재 이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어요. 가장 큰 해외시장인 중국을 겨냥해 개똥쑥을 첨가물로 넣은 소주를 개발하려고 합니다.” 이 과제를 통해 제주와 국내 소비자뿐 아니라 해외시장을 타깃으로 하는 글로컬(Glocal) 주류상품을 개발 하고자 한다. 글로컬 제품이란 지역 최고 명품이면서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상품을 일컫는다. ‘가장 제주다운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취지다. 제주 향토기업으로서 기업의 역사와 전통을 고수하면서도 새로운 트렌드에 발맞춰 끊임없이 연구하고 제품 개발에 힘쓰는 한라산. 제주에서 시작해 이제는 전국을 넘어 세계시장까지 진출하며 제2의 도약을 꿈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