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생산기술연구원

화상 환자에 대한 전문적 치료가 더욱 공고히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매년 전 세계적으로 약 30여만 명의 환자가 화상으로 사망하고 수백만 명이 화상 후유증으로 고통받고 있는 가운데 보다 실질적이고 유용한 치료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가 발전할수록 줄어드는 게 화상 환자라고는 하지만, 그런 만큼 화상을 입은 환자가 찾아갈 병원이 점점 적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화상 진료는 여러 가지로 어려움에 처한 상황이다. 특히 의료계에서도 화상 진료는 ‘3D 분야’라고 언급될 만큼 결코 쉽지 않은 분야다. 생기원 산업융합섬유그룹 김태희 수석연구원팀은 이러한 화상 치료를 보다 쉽게 진행할 수 있도록, 임시 피부 대체재 기술을 개발했다.

‘진짜 피부’를 대체하는 ‘진짜 같은 피부’

산업융합섬유그룹 김태희 수석연구원과 임정남, 도성준 수석연구원은 공동으로 연구를 진행해 화상 환자 치료에 쓰이는 ‘임시 피부 대체재 기술’을 개발했다. 이름 그대로 ‘일시적으로 피부를 대체하는 소재’로, 화상 환자 치료 시 주기적인 드레싱재 교체가 필요 없어 보다 간편하고 효율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루트를 열어준 셈이다. 국내 한 화상병원으로부터 기술 개발 요청이 들어와 연구를 진행하게 됐다는 김태희 수석연구원은 화상 환자가 치료를 받을 때 가장 힘들어하는 것 중 하나가 화상 부위를 소독하고 죽은 피부를 제거하는 드레싱 치료라고 이야기 했다. 화상 부위가 외부 환경과 접촉하지 않도록, 또한 진물을 흡수하고 새 살이 잘 올라올 수 있게 상처 부위에 거즈와 같은 드레싱을 대는 게 필수지만, 매일 새로운 드레싱으로 교체하기 위해 이를 피부로부터 제거하는 과정에서 환자가 겪는 고통이 매우 크다는 것이었다. 현 치료방법에서는 새롭게 자라나는 살이 드레싱 내부에 파고들게 되면 떼어낼 때 환자가 고통을 느낄 뿐 아니라 드레싱을 교체할 때마다 2차 감염의 위험에 노출될 수 있고, 상처치유 속도의 지연도 문제가 되고 있다. 김태희 수석연구원팀이 개발한 인공 피부는 이러한 고통을 줄여줄 수 있는 대체재다. 화상 부위에 ‘임시 피부’를 붙여 상처 부위에 거즈와 같은 드레싱재가 직접 닿지 않도록 돕는 셈이다. 부착한 인공 피부는 치료가 다 끝날 때까지 떼지 않아도 된다. 진물을 흡수할 수 있는 드레싱은 그 위에 감아주고, 진물이 과 도하게 흡수되면 ‘임시 피부’는 그대로 둔 채 겉에 있는 드레싱만 새것으로 교체하면 된다. 연구팀이 개발한 제품은 그 자체로는 마치 얇은 종이 같은 모양새를 갖고 있다. 흰 색의 맨들맨들한 느낌의 ‘임시 피부’는 화상 부위에 닿으면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한다. 먼저 진물을 흡수하면서 바로 투명해진다. 투명성이 갖는 장점은 치료 과정을 육안으로 생생히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전기방사 한계, 새로운 장비로 생산성 확보

개발된 임시 피부 대체재의 가장 큰 기술적 특징은 전기방사(Eletrospinning) 기술을 이용해 만들었다는 점, 상처 부위에 들러붙지 않으면서 치료 과정을 관찰할 수 있는 투명성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 더불어 생분해성을 가진다는 점이다. 전기방사란 전기장 내의 전위차를 이용하여 전기적으로 하전된 고분자 용액을 방사시키는 과정을 의미한다. 전기방사의 장점은 나노미터 사이즈의 가는 섬유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전기방사로 만들어진 가는 섬유를 차곡차곡 쌓으며 임시 피부 대체재를 만들게 되는데, 켜켜이 적층하는 만큼 층과 층 사이에 일정한 기공이 만들어지고 이러한 틈 사이로 수분과 공기가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어 원활한 통풍에 도움을 준다. 일반적인 부직포는 육안으로도 틈이 보일 만큼 기공이 크지만 김태희 수석 연구원팀이 만든 임시 피부 대체재는 공기와 수증기는 투과하지만, 박테리아 혹은 세균의 침입은 방지할 수 있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연구팀은 기존 주사기(Syringe) 방식의 전기방사 설비의 낮은 생산성을 극복하고자 와이어(Wire) 방식의 전기방사 설비를 도입하여 생산성도 확보했다. 무엇보다 셀룰로스 유도체(Carboxymethyl cellulose, CMC)를 이용하여 제조된 나노웹의 표면처리 기술을 확립함으로써 인공 피부로서의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었다. 기존 제품이 소수성인데 반해, 연구팀이 개발한 제품은 체액과 같은 수분과 친하기 때문에 흡액 특성이 우수하고, 체액 흡수시 바로 투명해지기 때문에 치유 과정에서 상처 부위의 상태를 관찰하는 것이 쉽고, 피부 밀착성이 우수하다. 또 다른 장점으로는 상처가 모두 아물면 피부 대체재가 상처 부위에 엉겨 붙지 않고 자연스럽게 떨어진다는 것이다. 또한, 생분해 물질을 이용했다는 점 역시 개발한 기술이 지니는 장점 중 하나이다. 생분해 물질이기 때문에 몸 속에서 저절로 분해돼 없어질 수 있어 치료 과정에서 상처 부위에 일부가 남더라도 문제되지 않으며, 생분해 특성으로 인해 상처 부위를 약산성(弱酸性)으로 만들어 줄 수도 있어 상처 치유 속도를 향상시킬 수도 있다. 인체의 피부뿐만 아니라 내부 장기를 수술할 때도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다. 김태희 수석연구원은 수술 후 장기와 장기 사이 유착이 우려되는 부위에 해당 제품을 붙여두면 유착방지가 가능할 뿐 아니라 저절로 분해돼 없어지므로 다시 꺼낼 필요도 없는 것은 물론, 성분 특성상 인체에 어떤 해도 끼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화상부터 창상까지… 더욱 폭넓게 이용되는 기술

이번 개발 기술은 비단 화상 부위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피부이식을 위해 신체의 다른 부위 피부를 떼어 상처의 피부를 복원해줄 때 공여부의 상처치유를 위해 적용될 수 있으며, 앞서 언급한 대로 유착방지재, 복합형 창상피복재, 의료용 인조포, 세포배양 지지체, 마스크팩 등 다양한 분야에 적용할 수 있다. 일반 창상에도 기술을 적용할 수 있다는 김태희 수석 연구원은 개발한 임시 피부가 여러 분야에 적용될 수 있으므로 환자들에게 유익을 제공할 것이라고 했다. 사실 연구팀이 개발한 임시 피부 대체재는 기존에 전혀 존재하지 않던 제품은 아니다. 다만 외산 제품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 중에서도 독일 제품이 국내 시장을 거의 장악했는데 비용이 너무 비싸 국내 개발이 꼭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이번 기술 개발은 환자의 고통을 덜어준다는 것, 더불어 순수 국내 기술을 이용해 개발한 제품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깊다. 심지어 외산 제품보다 성능은 더 우수하면서 가격은 절반 이하 수준을 실현했다는 점이 의미가 있다. 특히 제품의 많은 기능 중 ‘시술 시 즉각적으로 갖게 되는 투명성’은 김태희 수석연구원팀만이 보유한 유일한 기술이다.

김태희 수석연구원과 임정남, 도성준 수석연구원은 ‘H-Care’라는 팀을 이루고 함께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이번 연구에 앞서 ‘셀룰로스 유도체’를 이용한 상처치유 기능 소재’를 개발한 H-Care팀은 현재 신속한 지혈 기능을 갖는 지혈제와 복합 기능성 창상피복재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추후 조직재생과 관련한 연구에 더욱 매진할 예정이라는 김태희 수석연구원. 연구개발이 결코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만큼 H-Care팀 멤버들과 더불어 생기원 내 관련 연구를 하는 다른 부서들과도 자유롭게 협업하는 분위기 속에서 양질의 연구를 이어가고 싶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