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생산기술연구원

2011년 3월 일본 후쿠시마에서 발생한 원자력발전 사고는 재난재해에 대한 인류의 대처가 얼마나 중요한 지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였다. 당시 일본 정부는 재난 현장에 로봇을 투입해 현장을 조사하고자 했다. 하지만 로봇 강국이라는 일본도 오직 로봇만으로 재난 현장을 파악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이후 많은 국가에서 재난 로봇을 만들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했다. 융합생산기술연구소 로봇그룹 박재한 선임연구원팀이 개발한 ‘3차원 공간인식 로봇기술’ 역시 그 연장선에 존재한다. 그리고 현재, 이 연구결과는 독보적인 기술력을 자랑하고 있다.

재난로봇의 제1요건, 공간 인식

사고 현장에 투입되는 재난로봇은 다양한 요건을 갖춰야 한다. 그 중 가장 우선 되는 요건은 공간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다. 공간을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하면 재난 구조가 필요한 지점에 도착하는 것부터 난항을 겪기 때문이다. 재난 로봇은 원격으로 조종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지금까지 이 과정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조종자가 현장을 볼 수 있도록 로봇에 카메라를 부착했지만 영상을 통한 현장의 모습은 2D로 전달돼 실제와 차이를 보였다. 거리감과 화각이 다르게 나타나는 등 왜곡이 발생한 것이다. 때문에 일반 카메라를 부착한 재난로봇으로는 원만한 현장 파악이 힘들었고 박재한 선임연구원팀은 이를 개선하고자 기술 개발을 시작했다. 일명 ‘3차원 공간인식 기술’이다. 용어에서 알 수 있듯 해당 기술은 로봇이 공간을 3차원으로 파악할 수 있게 도와준다. 가장 먼저 레이저 센서를 이용해 공간의 거리를 계산한다. 레이저 센서로 수집된 공간 정보는 점군(point cloud)으로 이뤄진 정보다. 박재한 선임연구원팀은 여기에 카메라 정보를 덧입혀 색과 면을 씌웠다. 흑백의 점 정보만으로는 조종자가 공간을 쉽게 파악할 수 없으므로, 카메라 정보와의 융합으로 공간을 구체적으로 표현해준 것이다. ‘점 정보’와 ‘카메라 정보’를 융합한 것도 의미있는 결과지만, 여기서 만족하지 않고 인식한 공간의 장면 장면을 실시간으로 잇는 ‘맵핑(mapping)’ 기술까지 개발했다. 맵핑 기술이 있기에 로봇은 자신이 위치한 장소를 비로소 ‘공간’으로 만들 수 있었다. 이어서 데이터 전송을 위한 ‘압축기술’까지 개발, 조종자가 3D로 맵핑된 정보를 2D 영상을 접하는 속도로 받아볼 수 있도록 했다

조종자의 시선, “취향따라 선택하세요”

‘3차원 공간인식 기술’의 많은 장점 중 한 가지는 조종자의 시선 선택이 다양해진다는 점에 있다. 소위 말해 ‘카메라 뷰’가 자유로워지는 셈이다. 온라인 3D 게임을 연상하면 이해가 쉽다. 3D게임을 할 때 게이머는 주인공 1인칭 시점, 주인공에서 한 발 뒤로 떨어진 시점, 공중에서 전체 뷰를 보는 시점 등 원하는 조건에 따라 선택할 수 있다. 박재한 선임연구원팀의 기술도 이와 마찬가지다. 여기에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가상현실(VR) 기술을 접목하여 조종자가 더 현실감있게 로봇을 조종할 수 있는 시스템을 완성했다. 시점의 다변화는 이번 연구의 가치를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준 대표적인 성과다. 박재한 선임연구원은 해당 연구를 시작한다고 했을 때 주위로부터 부정적인 의견을 많이 들었다고 했다. 카메라 영상을 사용하면 되는데 굳이 3차원 인식기술이 꼭 필요하냐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박재한 선임연구원은 ‘꼭 필요하다’는 한결 같은 답변을 내놓았다. 이유는 명확했다. 카메라를 부착한 재난로봇의 경우, 영상이 왜곡되는 것도 문제지만 로봇이 위치를 바꾸지 않는 한 시점을 바꿀 수 없고, 그렇기에 공간을 파악하는데 한계가 생긴다. 한 예로 후쿠시마 원전 사태 당시 일본 정부는 현장을 파악하기 위해 카메라를 부착한 로봇을 투입시켰지만 투입된 한 대의 로봇만으로는 주위를 다양하게 살필 수 없었다. 오직 하나의 시점에만 의지해야 했기 때문이다. 결국 복잡한 재난 환경 속에서 로봇은 계속 장애물에 걸리고 넘어지는 등 현장 파악에 난항을 겪었고, 일본 정부는 로봇을 한 대 더 투입하는 결정을 내렸다. 추가로 투입된 로봇은 이미 투입된 로봇을 ‘보는’ 역할을 수행했다. 재난로봇이 처한 공간을 인식하기 위해서였다.

인간을 위한 로봇을 만들다

사람을 편리하게 하고, 사람을 돕는 역할. 박재한 선임연구원은 로봇은 철저하게 사람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이러한 목표를 향해 지금까지 달려왔다. 물론 연구 과정은 언제나 녹록치 않았다. 연구 선례가 없다보니 모든 시도를 처음부터 일궈내야 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고정관념과 시선, 처음 시작하는 연구로서의 시행착오 등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박재한 선임연구원은 이번 기술이 그 난관을 뚫고 나온 결과이기에 더 뿌듯하다고 했다. 기업에서도 흥미를 보이고 있다. 실제로 국내 한 방위산업체인 퍼스텍㈜은 박재한 선임연구원팀의 기술을 자사의 군사 로봇에 접목하고 싶다며 러브콜을 보내왔다. 현재 퍼스텍㈜은 로봇을 시장에 선보이기 위해 꾸준히 개발을 지속하는 중이다. 더 높은 수준의 기술을 위해, 박재한 선임연구원팀은 새로운 미션 수행방식을 고민하고 있다. 명령의 범위를 넓히는 것으로, 일종의 인공지능이다. 지금은 조종자가 로봇을 일일이 원격으로 다스리지만 명령 범위가 커지면 로봇은 일정 미션을 알아서 수행할 수 있게 된다. 예를 들어 ‘A구역까지 도착’ 이라는 미션이 내려지면, 조종자의 조종 없이 스스로 공간을 인식해 장애물을 피해서 로봇 혼자 목표점에 도달하는 것이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은 기술이다. 이것이 가능해지면 원격조종이 갖는 시간지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결국 로봇의 지능이 높아져야 한다. 박재한 선임연구원은 개발한 기술에 지능을 입혀 조종자와 로봇이 팀을 이룰 수 있는 수준까지 구현하고 싶다고 했다. 인간을 위해 사용되는 제대로 된 로봇을 만들고 싶다는 의미였다. 지능과 3차원 인식기술이 접목된 로봇이 존재하는 미래. 지금의 연구는 그 초석을 다지는 작업 중 하나다.